신문은 선생님

[책으로 보는 세상] 소통 없는 세상, 그곳엔 외로움만이 가득…

입력 : 2015.08.05 03:07

[78] 최인호 '타인의 방'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 사는 주인공, 이웃·아내와 교감 나누지 못하다 소외감 느껴 자신을 사물로 인식
반복된 일상에 지쳐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은 타인에 불과하다고 믿어

도시가 발달하면서 주거 형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땅이 좁고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아파트가 효율적인 주거 공간이 되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파트가 많아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에요. 제2차 경제개발계획(1967~1971)으로 아파트 건축이 활발해졌는데, 특히 이때 중산층을 위해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본격적인 붐이 일어났다고 해요. 지금은 익숙한 공간인 아파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깊고 푸른 밤'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해신' 등 대중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소설가 최인호(1945~2013)는 단편소설 '타인의 방'(1971)을 통해 서울에 막 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한 시기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어요.

[책으로 보는 세상] 소통 없는 세상, 그곳엔 외로움만이 가득…
/그림=이병익
"우리는 이 아파트에 거의 삼 년 동안 살아왔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소."

"아니 뭐라구요? (중략) 당신이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래 이 집 주인을 당신 스스로 도둑놈이나 강도로 취급한다는 말입니까? 나도 이 방에서 삼 년을 살아왔소. 그런데두 당신 얼굴은 오늘 처음 보오. 그렇다면 당신도 마땅히 의심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겠소?"

그는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소설의 주인공인 '그'는 출장을 다녀와 자신의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자 문을 두드려요. 그 소리에 놀란 이웃집 사내가 나와 3년 동안 이웃으로 지낸 '그'를 '도둑놈이나 강도'로 취급하지요. 본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옥 형태는 공동체를 지향했어요. 가족 구성원도 할아버지부터 손주에 이르기까지 대가족이었으며 이웃들은 크고 작은 일을 함께 나눴어요. 그런데 주거 형태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여러분은 바로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나요? 전통적인 형태의 주거 공간과 비교하면 아파트는 철저하게 사적인 공간이 되었어요. 아파트는 문으로 안팎의 공간을 드나들 수 있지만, 문을 닫는 순간 다른 어떤 사람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 되지요. 그래서 이런 사적인 공간만 남게 된다면 이웃도, 친구도, 심지어 가족도 모두 '타인'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때였다. 그는 서서히 다리 부분이 경직해 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우연히 느낀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이 방에서 도망가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소리를 내지 않고 살금살금 움직이리라고 마음먹고 천천히 몸을 움직이려 했을 때였다. 그러나 그는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중략) 그는 채 못 미쳐 이미 온몸이 굳어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숫제 체념해 버렸다.

시대적 아픔을 희극적으로 그려낸 소설을 많이 남긴 故최인호 작가.
시대적 아픔을 희극적으로 그려낸 소설을 많이 남긴 故최인호 작가. /조선일보 DB
집으로 들어온 '그'는 친정아버지가 위독해서 외출했다는 아내의 거짓 메모를 발견해요. 그리고는 인간적인 온기를 지닌 모든 것이 사라진 낯선 방에서 모든 물건이 예전의 물건이 아닌 것처럼 느끼죠. 그리고 사물들과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을 느끼다 다리가 경직되고 '그' 자신도 하나의 '사물'이 되고 말아요.

그녀는 곧 잊어버린 것이 없는 대신 새로운 물건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엄청난 고독을 느낀 '그'가 '사물'로 변해버렸지만, 다음 날 오후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남편이 없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 "몇 번 가지고 놀면 싫증이 나는 새로운 물건 하나를 발견할 뿐이에요."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모습은 어떤가요? 층간 소음으로 인한 갈등, 인간관계의 단절 및 소외 등은 연일 뉴스를 장식하며 너무나 보편적인 현대사회의 문제가 되었어요. 거대한 아파트로 상징되는 '타인들의 집합체'는 그 어떤 사람과도 교감을 나누지 못하고 사물과 교감을 나누다가 결국 사물이 되어버리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몰라요.

아파트와 같은 동일한 세계. 그 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은 '타인'에 불과해요. 그런데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도 '타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랍니다.

#이야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다양한 경향의 시를 선보인 고은(1933~)의 '어떤 기쁨'이라는 시를 본 적이 있나요? 간결하고 쉬운 언어로 이루어졌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시랍니다. 시인은 아마도 조용히 혼자 우는 이의 등을 본 듯해요. 그 사람은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과 같은 기분이 드는지 웅크리고 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어요. 우리는 때로 '타인의 방'의 '그'처럼 지독한 고독에 슬퍼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고은 시인은 자그마한 위로의 말을 건네줍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군가 "생각했던, 생각하고 있는, 막 생각하려던" 것이므로 "울지 마라"고. 그리고 덧붙입니다. "얼마나 기쁜 일"이냐고. "나는 수많은 나로, 수많은 남과 남으로" 이루어졌다고. 결국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줄 이는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는 세상에선 '타인'이 아닌, '수많은 나'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혼자가 아니라 할 수 있지요.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든 적 있나요? 그럴 때 어떻게 했나요?

양미연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