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케플러의 우주 망원경… 가려져 있던 천체의 비밀 밝히다

입력 : 2015.07.31 03:27

[천문학의 발전]

고대부터 밤하늘 보며 운명 점치고 신 중심이던 중세 시대 '천동설' 믿어
인간 세계 관심 두기 시작한 르네상스
코페르니쿠스 '지동설' 주장 이후 갈릴레이·케플러 의해 사실로 증명돼

"지구로부터 1400광년 떨어진 백조자리에서 지구와 거의 흡사한 행성 '케플러-452b'를 발견했다." 마치 공상과학영화의 대사와 같은 이 말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지난 7월 23일(현지 시각) 발표한 내용이에요. 지난해 인기 있었던 영화 인터스텔라를 눈앞에서 보는 것 같지요. 1400광년은 자그마치 1경3254조㎞나 되는 먼 거리인데요. 이렇게 먼 거리에 있는 행성을 관측할 수 있는 것은 과학자이자 점성술사였던 케플러(1571~1630)의 이름을 딴 케플러 우주망원경 덕분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은 지금 내가 사는 현실 세계와 밤하늘에 관심이 많았어요. 날마다 모양이 달라지는 달, 계절마다 위치가 바뀌는 별…. 밤이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이 발달했죠. 이집트 역시 나일 강의 범람 시기를 알아내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며 천문학을 발달시켰어요. 이러한 오리엔트 문명을 이어받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들도 자연현상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지요. 우주의 근원을 설명하거나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기도 했어요.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나머지 행성들이 그 주위를 공전한다는 지동설을 표현한 그림이에요.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나머지 행성들이 그 주위를 공전한다는 지동설을 표현한 그림이에요. /Corbis/토픽이미지

천문과학의 발달에 제동이 걸린 것은 기독교 중심의 중세가 시작되면서부터예요.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고 있다는 천동설이 우주관이 되었고, 천문학은 학문으로서의 역할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이후로 1000년 동안 서유럽의 모든 문화는 인간보다는 신, 철학이나 과학보다는 신학이 중심이 되었지요. 신의 아름다움 앞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은 점점 작아졌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중세를 암흑시대로만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수도원과 대학을 중심으로 고대의 문화유산이 면면히 이어져 보존되었으니까요. 다시 말해, 새로운 시대를 위한 씨앗을 품고 있었던 거죠.

14세기 무렵 변화의 중심에 선 나라는 바로 이탈리아였어요. 이곳은 고대 로마제국의 중심지로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유산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요. 봉건제도에 얽매인 농촌의 장원과 달리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는 활기찼어요. 고대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었죠. 중세에는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어요. 특히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술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아름답게 표현했지요. 이탈리아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이었던 메디치 가문에서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예술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피렌체는 꽃이라는 도시 이름 그대로 문화의 꽃이 되었고요. 새로운 열풍은 알프스를 넘어 서서히 온 유럽으로 퍼져 나갔어요. 마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가 다시 살아난 듯했어요. 게다가 교회와 교황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어요.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에서 교황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거침없이 비난했어요.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에서 중세 기사들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했죠. 이렇게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일어난 인간 중심적인 문화 운동을 르네상스(Renaissance)라고 불러요. 프랑스어로 부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독일의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의 모습(왼쪽). 그가 만든 망원경의 원리는 현재까지도 활용되고 있지요. 초기의 천문학은 별과 달을 보며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의 형태였어요. 오른쪽은 점성술을 표현한 것이에요.
독일의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의 모습(왼쪽). 그가 만든 망원경의 원리는 현재까지도 활용되고 있지요. 초기의 천문학은 별과 달을 보며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의 형태였어요. 오른쪽은 점성술을 표현한 것이에요. /위키피디아

예술과 문학에서만 새바람이 분 것은 아니었어요. 이슬람 상인들을 통해 동양의 새로운 발명품이 전해졌어요. 화약이 전해지면서 봉건제도를 이끌던 기사 계급은 몰락하게 되었어요. 나침반은 새로운 항로 개척을 통해 사람들을 낯선 세계로 이끌었죠.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금속 활판 인쇄술로 책이 보급되면서 지식의 확대를 가져왔답니다.

중세 사회를 이끌어오던 질서가 무너지면서 르네상스의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사는 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돌고 있다는 천동설에 가장 먼저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코페르니쿠스였어요. 사실 그는 한 번도 망원경을 통해 우주를 바라본 적이 없어요. 다만 시력은 좋았다고 알려졌죠. 그는 그동안의 연구를 토대로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공전하고 있다는 지동설을 알아냈어요. 하지만 그 주장을 죽을 때까지 입 밖에 내지 않았다고 해요. 중세의 우주관을 뒤엎는다는 것은 당시로써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으니까요. 대신 '천체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라는 그의 책이 출판되던 날, 공교롭게도 사망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이 책의 내용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책 제목의 revolutionibus에서 혁명을 뜻하는 revolution이 생겨났다고 해요. 망원경을 통한 우주 관측으로 지동설을 증명해낸 과학자가 갈릴레이예요. 갈릴레이가 접안렌즈에 오목렌즈를 사용해 망원경을 만들었다면, 케플러는 볼록렌즈 두 개를 사용해서 더 높은 배율의 망원경을 만들었지요.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제작되었어요. 이런 방식의 망원경을 케플러식 망원경이라고 부르는데요. 현재 미국의 나사는 케플러우주망원경으로 우주를 탐사하고 있지요. 만유인력의 법칙을 연구한 뉴턴은 이 망원경을 더욱 발전시켜 반사망원경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17세기 과학 혁명의 시대를 열었어요.

점성술에서 시작된 천문학은 이제 1400광년 밖의 우주에서 또 하나의 지구를 찾을 정도에 이르렀어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공미라·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