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미술관에 갔어요] 예술… 디에고… 그녀가 사랑했던 모든 것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프리다 칼로展]
어릴적 사고로 고통받던 프리다 칼로, 화폭에 삶의 절망·희망 함께 담아
자화상 속 남편 얼굴 그려 넣으며 그를 통해 받은 예술적 영감 표현해
색다른 시각의 女화가로 인정받아요
사람이 만약 눈을 세 개 가지고 있다면, 그러니까 양쪽 두 눈과 더불어 이마 위에 또 하나의 눈이 있다면, 무엇을 더 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은 두 눈으로 보는 세상이에요. 이마 위에 얹힌 세 번째 눈은 보통 마음의 눈이라고 하지요. 이 눈은 보통은 깊이 잠든 상태라고 해요. 오직 심오한 깨달음이 있을 때에만 번쩍 눈을 뜬다고 합니다. 혜안(慧眼·지혜의 눈)을 갖는다는 말이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요? 우리의 마음처럼 밤에 어둠이 내려도 이 눈은 밝게 빛나고, 어르신의 지혜처럼 나이가 들수록 침침해지기는커녕 점점 환해지는 눈이랍니다.
서로에게 눈동자가 되어준 부부 화가가 있었어요. 멕시코 출신의 디에고 리베라(1886~1957)와 프리다 칼로(1907~1954)예요. 인기 민중 화가 디에고는 언제나 프리다를 '나의 눈동자'라고 불렀고, 프리다는 디에고의 얼굴이나 눈을 자화상 속 자신의 이마에 종종 그려 넣었어요. 둘은 아마도 상대방의 눈을 통해 자기가 보지 못하는 다른 모습의 세상을 볼 수 있었던 모양이에요.
- ▲ 작품1 - 프리다 칼로, 〈내 마음 속의 디에고 (테우아나 차림의 자화상)〉, 1943,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작품1을 보세요. 프리다가 그린 자화상 '내 마음 속의 디에고'인데, 짙은 눈썹 위 이마를 보면 디에고의 얼굴이 제3의 눈처럼 놓여 있어요. 그림 속 프리다는 레이스가 달린 멕시코 인디오(토착 원주민)의 옷을 머리에 쓰고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경건한지 마치 신을 모시는 성직자처럼 보이는군요. 그녀의 머리카락은 레이스 주름장식에서 풀려나온 흰색 실 줄기들과 함께 나뭇가지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어요. 마치 그녀가 뿜어내는 영적인 힘이 그림의 틀을 넘어 우리가 있는 곳까지 퍼져 나오는 기분이 들죠.
- ▲ 작품2 - 프리다 칼로, 〈우주, 대지(멕시코),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1949,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작품2는 '우주, 대지(멕시코),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이라는 작품이에요. 여기에서는 디에고가 아기의 모습으로 프리다의 품에 안겨 있는데 자세히 보니 이마 위에 역시 눈이 하나 더 그려져 있네요. 프리다가 디에고를 안은 자세는 유럽의 많은 그림에서 봤던, 성모가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피에타'의 포즈를 생각나게 하네요. 두 사람을 한꺼번에 감싸 안는 더 큰 존재가 그림 속에 있어요. 흙색으로 표현되어 있고, 식물에게 젖을 주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대지의 어머니인 것 같아요.
이 그림은 멕시코의 신화와 역사를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멕시코는 16세기 이래로 19세기에 독립하기 전까지 스페인의 통치 아래에 있었어요. 16세기 이전에는 토착 원주민들의 문화가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후에는 스페인의 영향으로 유럽의 문화가 들어와 뒤섞이게 되었답니다. 프리다의 그림에서도 유럽의 미술에서 원류를 찾을 수 있는 성모자 상과 더불어 대지의 여신이라는 토착 원주민의 신화가 섞여 있지요. 우주의 하늘이 대지의 여신을 품 안에 끌어안고 있군요. 밤을 다스리는 달의 검은 손과 낮을 지배하는 태양의 하얀 손으로 말이에요. 구석에 쪼그린 강아지는 내세로 갈 때 길동무가 되어준다는 개인데, 지금은 쉬고 있네요.
- ▲ 작품3 - 프리다 칼로, 〈드러난 삶의 풍경 앞에서 겁에 질린 신부〉, 1943, 캔버스에 유채.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운명의 여신은 가장 외로운 프리다를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가장 활동적인 디에고의 곁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프리다에게 그림은 거울이었고, 디에고에게 그림은 세상이었어요. 프리다는 디에고의 눈을 통해 자신의 방 밖으로 펼쳐진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지요. 물론 디에고는 자신을 조용히 비추어 줄 거울 하나를 얻은 셈이었고요.
문의: 소마미술관 (02)801-7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