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상을 바꾼 리더] 어린 시절 품은 상상력… 영화 통해 새로운 세계 보여주다

입력 : 2015.07.23 03:06

[75] 스티븐 스필버그

수많은 흥행작을 만든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수많은 흥행작을 만든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조선일보 DB

'쥐라기 공원' 'E.T.'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의 이름을 모두 들어 보았을 거예요.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작품성도 인정받은 이 영화들은 바로 미국 최고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1946~)의 작품이에요.

최고의 명성을 얻은 스필버그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외롭고 힘들었어요. 책을 잘 읽지 못하는 난독증이 있었던 데다가 유대인에 대한 친구들의 따돌림 때문에 학교 가기를 싫어했거든요. 그런 스필버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영화였어요. 스필버그는 아버지의 비디오카메라로 가족 소풍을 촬영하게 된 후로 영화 만드는 일에 푹 빠졌죠. 스필버그는 다양한 앵글과 기술을 스스로 터득하였고, 친구들을 주인공 삼아 영화를 만들었답니다.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공부에 별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어요. 대신 스필버그의 뛰어난 상상력을 북돋우기 위해 동화책을 자주 읽어 주었어요. 그 기억은 후에 스필버그가 동화 '피터팬'을 주제로 한 '후크'라는 영화를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영화를 통해 자유로운 상상을 마음껏 펼친 스필버그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유명 영화 제작 회사인 유니버설스튜디오와 정식 계약을 맺은 촉망받는 감독이 되었어요. 그리고 히트작을 계속해서 발표하며 승승장구했죠. 환상과 모험, 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스필버그의 영화는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고, 사람들은 그를 천재 감독이라고 칭송했어요. 하지만 스필버그의 성공이 거듭할수록 반대쪽에서는 그가 인기 있는 영화만 만들 뿐 예술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커졌어요. 실제로 스필버그는 많은 사랑을 받는 감독임에도 세계적인 영화제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 번도 상을 받지 못했거든요.

그러던 중 스필버그는 한 시나리오를 보게 되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사람인 오스카 쉰들러가 독일군에게 죽임당하는 유대인들을 구출해 낸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었어요. 스필버그는 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했어요.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완성하기에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고민에 빠지기도 했고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스스로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렇게 스필버그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끝에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완성했어요. 영화 속에는 전쟁의 비참함과 유대인들이 겪은 끔찍한 고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고, 슬픔을 뛰어넘는 위대한 인간애가 그려져 있었어요. 영화는 개봉되자마자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죠. 마침내 스필버그는 이 영화로 제6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무려 7개 부문에서 수상하였어요.

그 이후로도 스필버그는 계속되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터미널' 등 역사, 전쟁, 공상과학, 드라마 등 각종 장르를 넘나들었어요.

스필버그는 말했어요. "나는 영화를 통해, 상상력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어느 곳에서나 살 수 있었다"라고요. 많은 사람은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어린아이 같은 상상력을 가진 천재 감독'이라고 해요. 실제로 그는 무궁무진한 꿈을 창조해 냈고, 많은 관객이 스필버그의 새로운 세계에 열광하였답니다.


[1분 상식] 영화, 어떻게 만들졌나요?

영화와 관련된 기술 개발은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1847~1931)으로부터 시작되었어요. 에디슨은 세계 최초의 영사기 '키네토스코프'를 발명했어요. 키네토스코프는 연속된 장면을 찍은 사진을 빠르게 돌려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한 뒤, 그것을 작은 구멍을 통해 보는 기계였어요. 정지된 사진에 익숙하던 사람들은 움직이는 영상을 보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죠. 그 후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열차'라는 영화를 만들어 파리의 한 카페에서 상영했어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오늘날의 영화의 개념이 시작된 것이에요.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열차가 자신들에게 달려온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대요.

박영진 후(who) 시리즈 위인전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