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책으로 보는 세상] "왕이여, 지혜란 '어리석음'을 벗는 것이지요"
[76] 작자 미상 밀린다팡하
밀린다 왕과 인도 나가세나 승려
각자의 신분 버리고 대등하게 전생·불교 등에 대한 문답의 기록
상대방과 올바른 토론 하려면 편견·아집 없이 생각하는 게 중요해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어떤 사안을 두고 자기 주장을 펼치며 그 타당함을 보이거나 상대방의 주장에 허점이 있음을 지적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거예요. 이러한 사람을 '논객(論客)'이라 부르는데, 논리적인 주장을 하는 경우에는 화제가 되기도 해요. 공자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고대의 훌륭한 사상가들을 보더라도 대화와 토론을 매우 중요시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요.
'밀린다팡하' 역시 마찬가지예요. '밀린다팡하'는 인도의 고대어 중 하나인 팔리어로서 '밀린다의 물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밀린다팡하'는 기원전 2세기 경에 북서부 인도를 지배했던 인도-그리스 왕국(박트리아 왕국)을 다스렸던 밀린다('메난드로스'의 인도식 표기) 왕과 승려 나가세나 존자(尊者·존경받는 이)가 불교 교리 가운데 의문스럽고 모순된 것에 대해 묻고 답한 내용을 기록한 대화록이에요.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 책은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존자에게 물었다 하여 '밀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또는 미란타왕문경)'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어요.
그리스인이었던 밀린다 왕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었고 나가세나 존자는 북서부 인도에서 가장 존경받던 승려였어요. 두 논객이 각각 그리스와 인도의 자존심을 걸고 한판 대론(對論·토론하거나 이치를 밝히는 일)을 펼친 것이었지요.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는 왕과 백성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현자(賢者·어진 사람) 대 현자로서 대등하게 대론하기로 약속했어요.
- ▲ 그림=이병익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불교를 믿지 않거나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답니다.
"존자여, 지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왕이여, 지혜는 끊어버림(斷切·단절·번뇌에서 벗어남)을 특징으로 한다는 말을 이미 했습니다. 그러나 또한 지혜는 밝게 비춤(光明·광명·어리석음에서 벗어남)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존자여, 왜 사람은 똑같지 않습니까?"
"왕이여, 전생의 행위가 똑같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 다르게 살다 갑니다."
인도에서는 착한 행위와 나쁜 행위로 인해 다음 생에서 살아가는 모양새가 결정된다고 보았어요. 그렇지만 지혜를 터득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의 갈등인 '번뇌'와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해요. 이러한 자유로운 마음 상태를 해탈(解脫)이라 부르고 이러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죠. 오래도록 카스트 제도라는 신분의 지배를 받아왔던 인도인에게 불교는 그것을 즉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답니다.
'밀린다팡하'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부분은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의 전생의 인연을 언급하며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가 대론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어요. 두 번째 부분은 밀린다가 불교 교리에 대해 요목조목 질문을 하고 나가세나가 이에 답하는 내용이고, 세 번째 부분은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덕목을 풀이한 내용이에요. 적은 분량임에도 다양한 비유를 통해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불교 교리를 친절하고 상세하게 보여주는 것이 매력이죠.
특히 철학적으로 중요한 물음인 자아(自我)란 무엇인지, 윤회(輪廻·삶과 죽음의 연속)는 영원히 지속하는지, 선하고 악한 업(業·행위)에 따른 책임은 어떻게 받게 되는지, 열반(涅槃·깨달음으로 이르는 궁극의 상태)에 이르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부처님은 최고의 인격자라 할 수 있는지 등 수십 가지에 이르는 불교 교리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두 논객의 치열함만으로 충분히 배울 점이 많은 책이랍니다.
#이야기
1957년에 제작된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라는 매우 오래된 영화 한 편을 소개해 볼까 해요. 한 소년이 부친 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고, 각기 다른 직업과 배경을 가진 12명의 배심원이 이를 심리하게 되죠. 첫 투표에서 11명이 유죄를, 단 한 명이 무죄를 선고해요. 이후 12명의 사람은 정말 '성난' 것처럼 무죄와 유죄를 따지게 되고 격렬하고 쉼 없는 토론을 진행하여 결국 12명 만장일치로 무죄를 선고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소년은 유죄를 선고받아 사형을 당했겠죠.
현대 사회에 들어서 대화와 토론은 매우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 되고 있어요. 대화와 토론의 목적은 '12인의 성난 사람들'에 나오는 것처럼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고 문제를 꼼꼼히 분석하여 각자가 가진 편견과 아집을 벗어나 올바른 인식과 판단에 이르는 것이죠.
그 과정은 매우 지루하고 공격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비참하고 모욕감을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대화와 토론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지성과 인격을 갖출 수 있답니다. 단지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상대방이 가진 논리의 부족함을 공격하거나 본인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아님을 기억해야 해요.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어떤 주제로 대화와 토론을 하나요? 그 대화와 토론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나요? 합리적 사고와 정확한 지식의 습득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신을 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