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상을 바꾼 리더] 'DDT' 위험성 고발한 환경운동가… 자연 없이 인간의 행복 없음을 외치다
입력 : 2015.07.16 03:07
| 수정 : 2015.07.16 10:17
[74] 레이철 카슨
레이철 카슨(1907~1964)은 최초의 과학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예요. 그는 미국 스프링데일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어요. 레이철이 태어난 해는 미국에 대공황이 닥친 해였어요. 레이철의 집안 사정도 어려워졌죠. 공장이 들어선다는 소문을 믿고 빚까지 내서 산 거대한 숲이 쓸모없어졌기 때문이에요. 숲은 부모에게는 고민이었지만, 레이철에겐 꿈의 장소였어요.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어요.
레이철은 작가가 되기 위해 영문과에 입학해요. 하지만 생물학을 배우면서 자연의 신비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결국 레이철은 동물학으로 전공을 바꿔요. 그리고 레이철은 우수한 성적으로 존스 홉킨스 대학원에 입학하죠. 레이철은 조교 일을 하며 어렵게 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것은 집안 사정상 힘들었기 때문에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취업을 결심해요.
레이철은 작가가 되기 위해 영문과에 입학해요. 하지만 생물학을 배우면서 자연의 신비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결국 레이철은 동물학으로 전공을 바꿔요. 그리고 레이철은 우수한 성적으로 존스 홉킨스 대학원에 입학하죠. 레이철은 조교 일을 하며 어렵게 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것은 집안 사정상 힘들었기 때문에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취업을 결심해요.
- ▲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쓴 미국의 여성 과학 작가인 레이철 카슨(오른쪽). 그녀가 과학 연구를 하는 모습. /조선일보 DB, 위키피디아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일어나요. 당시에는 번식력이 강한 이와 벼룩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어요. 이때 DDT라는 강력한 살충제가 등장해 '신이 내린 약'이라 불리며 미국 정부의 지원 아래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었어요. DDT는 해충을 없애기 위해 숲이나 밭 등에 대량으로 뿌려졌는데, 이런 곳에서는 어김없이 커다란 재앙이 일어났어요. 해충들은 DDT에 적응하여 숲을 엉망으로 만들었죠.
레이철은 각종 신문 자료와 문서, 소송 자료 등을 토대로 DDT에 대한 정밀 조사를 시작했어요. 결과는 심각했죠. 몸 안에 모인 DDT는 장기를 파괴해 백혈병 같은 치명적인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었던 거예요. 레이철은 이 사실을 기사화하여 널리 알리고 싶었지만, 어떤 잡지사도 DDT가 위험하다는 기사를 실어주지 않았어요. 살충제 회사와 정부의 힘을 무서워한 거예요. 제조회사가 진실을 숨기기 위해 큰돈으로 정부 관료들을 매수하고,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과학자들을 고용하여 DDT가 안전한 약품이라 홍보한 거예요. 하지만 레이철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방대한 자료와 과학적 증거들을 모았어요. 말기 암 판정을 받아 건강을 잃은 상황에서도, 레이철은 자신이 모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책을 썼죠. 그 책이 바로 '침묵의 봄'이죠.
살충제 회사에서는 책이 출간되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레이철을 모함했지만, 진실을 향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어요. '침묵의 봄'을 읽은 사람들은 발전을 위해서라면 자연을 마음껏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 환경운동 단체를 만들었죠. 이들과 더불어 레이철은 죽는 날까지 살충제 사용을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답니다.
[1분 상식] DDT란?
DDT는 1874년 화학자 자이들러에 의해 만들어졌어요. DDT에 강력한 살충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용하게 쓰였죠. 이와 벼룩을 죽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고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량생산되어 팔려나가기 시작했답니다. 하지만 1957년부터 DDT의 해악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출판되면서 DDT의 유해성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됐어요. 이후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도 사용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