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보석, 화가 손길에 더 찬란하게 빛나다

입력 : 2015.07.10 03:09

귀족 등 특권층만 가질 수 있던 보석… 부를 향한 인간 욕망 작품에 담아내
눈 모양 시계에 수놓은 다이아몬드, 디지털 화폭 위 크리스털 붙이는 등 보석 이용해 입체적 작품 만들었어요

흔히 보석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에 비유돼요. 보석의 화려한 색깔, 눈부시게 빛나는 광채, 쉽게 변형되지 않는 성질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또한 보석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빛내주는 역할도 해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 1을 보면 보석이 여성의 미모를 돋보이게 한다는 말이 실감나지요. 짙은 어둠 속에서 터키식 푸른 터번을 쓴 소녀가 고개를 돌려 관객을 바라보네요. 소녀는 왼쪽 귀에서 반짝이는 진주 귀걸이처럼 신비하고 아름답군요. 그런데 이 진주 귀걸이의 알이 무척 크네요. 혹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죠. 이에 대해 일본의 복식 연구가 후카이 아키코는 베르메르가 의도적으로 진주알을 크게 그렸다고 말해요. 당시 네덜란드는 세계적인 해양 강국으로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죠. 사회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돈 많은 상인은 현실적인 데다 물질적 욕망도 강했어요. 천연 진주는 귀한 보석으로 여겨져 동남아시아 등에서 유럽으로 수입되었고, 비싼 값에 거래되었지요. 부귀, 순결, 매력을 상징하는 진주는 여성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 결과 네덜란드에서는 진주 열풍까지 불었다고 해요. 그런 시대 분위기가 베르메르에게 진주 귀걸이를 크게 그리도록 자극을 준 것이죠.

작품 1 -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년경. 작품 2 -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무아트시에 부인의 초상, 1851년. 작품 3 -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눈, 1949년. 작품 4 - 황인기, 오래된 바람-원통각 2, 2007년.
작품 1 -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년경. 작품 2 -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무아트시에 부인의 초상, 1851년. 작품 3 -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눈, 1949년. 작품 4 - 황인기, 오래된 바람-원통각 2, 2007년.
캐나다의 역사학자 티머시 브룩은 베르메르가 진주를 광학적 특성을 실험하는 도구로 사용했다고 해요. 그는 "커다란 진주 귀걸이 표면에는 소녀가 입은 옷 색깔과 터번, 왼쪽으로 소녀의 모습이 비치는 창문, 소녀가 앉아 있는 화가의 작업실 풍경이 어렴풋하게 비친다"고 강조했죠. 그렇다면 베르메르는 진주가 나오는 그림을 여러 점 그렸는데 이는 단순히 좋아해서만은 아니었겠군요. 진주는 여성의 아름다움, 귀한 보석을 갖고 싶은 인간의 욕망, 매끄러운 표면에 비친 빛의 반사 효과를 실험하는 창작의 도구인 것이죠.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도 베르메르만큼이나 보석을 즐겨 그렸어요. 작품 2의 모델은 파리의 부유한 은행가 무아트시에의 부인이에요. 무아트시에 부인은 보석을 무척 좋아했는지, 여러 가지 보석으로 온몸을 장식했어요. 가슴 부위에 달린 커다란 브로치의 보석은 일명 석류석으로도 불리는 가넷이에요. 가넷은 '귀족의 레드'라고 불릴 만큼 당시 유럽 부유층 여성에게 인기가 많았어요. 양쪽 손목과 손가락을 장식한 팔찌와 반지에도 다이아몬드, 자수정, 에메랄드, 오팔 등 화려한 보석이 박혀 있네요.

앵그르는 보석을 강조하고자 보석의 빛깔과 광택을 정밀하게 그렸어요. 그는 왜 보석을 중요하게 생각했을까요? 프랑스혁명 이후 새롭게 등장한 부르주아(자본가 계급)의 경제력과 사치스러운 취향을 보여주기 위해서죠. 과거에는 왕족과 귀족 등 사회 특권층만이 보석을 소유할 수 있었어요. 보석은 권위와 힘, 사회적 지위,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었죠. 그러나 시민혁명 이후 귀족이 아닌 부유한 부르주아도 보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경제력을 가진 신흥 부르주아는 사치스럽고 화려한 생활을 즐겼던 귀족 사회를 부러워했어요. 그리고 부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도 강했고 패션과 유행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앵그르는 날카로운 눈으로 사회의 변화 과정을 꿰뚫어 보았고, 그 변화상을 보석에 투영한 것이죠.

다음은 20세기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 나타난 보석 사랑을 확인해볼까요? 달리는 치즈처럼 축 늘어진 시계를 그린 그림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보석을 사용해 사람의 눈 같으면서도 시계도 되는 기발한 작품을 만들었군요. 작품 3에서의 눈꺼풀은 백금과 다이아몬드, 눈물구멍(누점)은 루비, 눈에 맺힌 굵은 눈물 한 방울은 다이아몬드를 박아 만든 것이죠. 달리는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 장신구, 가구, 패션디자인 등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어요. 특히 보석을 좋아해 그것을 직접 디자인하고 미술 재료로도 사용했어요. 이런 달리의 천재성과 보석이 결합하여 기발하고 상상력 넘치는 작품이 태어나게 된 거죠.

우리나라 황인기 작가는 진짜 보석보다 가치, 희소성, 내구성은 떨어지지만 아름다움을 지닌 준보석을 미술 재료로 사용해요. 작품 4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면 전남 순천에 있는 선암사 원통각(전남 유형 문화재 169호로 지정)을 그린 풍경화처럼 보여요.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원통각을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를 이용해 픽셀(이미지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점)로 전환하고 크리스털을 붙여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죠. 황 작가는 디지털 화폭에 크리스털이나 레고 블록 등을 붙이는 독특한 기법을 개발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어요. 왜 붓과 물감 대신 크리스털을 사용할까요? 2차원 평면 화폭에 3차원적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서죠. 크리스털을 붙인 부분은 앞으로 튀어나오고 나머지는 평평하기 때문에 물감으로 그린 그림에서는 얻기 어려운 공간감, 깊이감, 명암을 나타낼 수 있어요. 보석이 들어 있는 작품들은 사람들이 왜 보석을 좋아하는지 알려주고 있는 것 같네요.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