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교과서 여행] 금강 따라 꽃피운 백제의 역사 담고 있는 산성이랍니다
입력 : 2015.07.08 03:09
[122] 공주 공산성
지난 4일 독일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어요.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 공산성, 공주 송산리 고분군,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부여 능산리 고분군, 부여 정림사지, 부여 나성 등이에요. 이로써 우리나라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12번째 세계유산을 갖게 됐죠.
오늘 찾아갈 곳은 백제역사유적지구 중 충남 공주에 있는 공산성이에요. 공주는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의 현재 이름이죠. BC 18년 하남 위례성에서 시작한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한성이 함락되자 475년(문주왕 원년) 웅진으로 도읍지를 옮겨 웅진 시대를 열었는데, 공산성은 538년 사비(지금의 부여)로 옮길 때까지 63년간 백제의 왕성이었던 곳이에요.
오늘 찾아갈 곳은 백제역사유적지구 중 충남 공주에 있는 공산성이에요. 공주는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의 현재 이름이죠. BC 18년 하남 위례성에서 시작한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한성이 함락되자 475년(문주왕 원년) 웅진으로 도읍지를 옮겨 웅진 시대를 열었는데, 공산성은 538년 사비(지금의 부여)로 옮길 때까지 63년간 백제의 왕성이었던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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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공주시에 있는 공산성은 백제의 대표적 고대 성곽으로 당시는 웅진성이라 했으나, 조선 시대 들어 지금 이름으로 불렀어요. /조선일보 DB
매표소에서 공산성을 바라보면 금서루 양쪽으로 산성이 펼쳐지고 산성에는 황색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 깃발 안에 있는 그림은 송산리 고분군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것인데 황색은 백제를 상징하는 색깔이지요. 백제 시대 사람들은 황색을 우주의 중심이 되는 색이라고 생각해 귀하게 여겼다고 해요.
깃발이 나부끼는 성벽을 바라보며 공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많은 비석이 세워져 있어요. 주로 옛날부터 공주를 위해 큰일을 했던 사람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것인데, 모두 47개예요. 처음부터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고, 제각각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해요.
금서루는 현재 공산성의 정문 역할을 해요. 공산성을 발굴할 당시 이곳에는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 있었고, 동문인 영동루와 서문 금서루는 1993년에 복원한 것이에요. 공산성 안에는 왕궁과 마을 터 등이 있어요. 30년이 넘게 걸린 발굴 조사를 통해 성벽과 왕궁 터를 비롯한 부속 시설 터 등이 드러났죠. 초기 왕궁 터에서는 큰 건물 터와 돌로 쌓은 둥근 연못 터, 저장 시설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어요. 또 성 안에 있던 마을 터는 넓고 평탄한 곳인데 여기에서는 옻칠 가죽 갑옷과 찰갑(작은 쇳조각을 가죽끈으로 엮어서 만든 갑옷), 큰칼, 장식용 칼 등이 나왔죠. 특히 고급스럽고 화려한 상태로 발견된 갑옷에는 645년이라는 글씨가 생생하게 새겨져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요.
63년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백제는 이곳에서 화려한 백제 문화를 꽃피우다 공산성보다 더 넓은 땅을 찾아 사비로 도읍지를 옮겼어요. 고구려에 패해 공산성에 들어온 백제, 이후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밀려 다시 이곳으로 피신해 끝내 이곳에서 항복을 했답니다.
공산성이 백제 시대 만들어진 성이라고 해서 이 시기에만 성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겠죠? 백제 이후 고려, 조선 시대의 터와 건물들이 있는데 특히 조선 인조대왕의 일화가 전해지는 쌍수정은 인조가 이괄의 난으로 피신해 머문 곳이기도 하답니다.
[1분 상식] 이괄의 난?
광해군을 내치고 인조임금이 새롭게 왕에 오른 사건을 '인조반정'이라 하는데, 이 반정에 가담했던 이괄이란 신하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해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품고 일으킨 반란이에요. 이때 생긴 일화가 있어요. 이괄의 난으로 인조가 공산성에 피신했을 때 어느 날 떡을 먹었는데 그 떡이 아주 맛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아무도 떡 이름을 모르고, 다만 임씨라는 성을 가진 농부가 갖고 온 것이라고 했죠. 인조는 임서방이 갖고 온 떡이라고 해서 '임절미'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이것이 후에 '인절미'가 되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