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자유를 향한 외침으로… 미국, 새롭게 태어나다

입력 : 2015.07.03 03:07

[미국 독립 선언]

7년간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영국, 차세법 등 식민지에 과한 세금 부과해
식민지인, 독립 향한 마음 커져…
미국에선 독립선언문 만들어지며 영국에 대항해 해방 이끌었어요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12월 31일 자정 무렵이면 서울 종로는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보신각에서 울리는 33번의 종소리에 새해의 소망을 담기 위해서지요. 종로(鐘路)는 이름 그대로 '종이 있는 거리'를 뜻하는데요, 조선시대에는 보신각에 있던 동종 소리가 한양 성문을 여닫는 신호로 사용되었어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동종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고요. 그렇다면 지금 있는 종은 무엇일까요? 에밀레종으로 더 유명한 성덕대왕 신종의 복제품이에요. 크기도 매우 크지만, 울리는 소리가 깊고 아름다워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지요. 한편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종으로 알려진 '자유의 종'은 미국 독립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해요.

식민지 대표들이 주축이 된 대륙회의에서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기초위원이 독립선언문을 의장에게 제출하고 있어요.
식민지 대표들이 주축이 된 대륙회의에서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기초위원이 독립선언문을 의장에게 제출하고 있어요. /위키피디아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어요. 미국은 정치적인 자유, 종교적인 자유, 경제적인 성공을 꿈꾸는 이민자들의 땅이었죠. 이 사람들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생긴 건 조지 3세가 영국의 왕이 되면서부터였어요. 조지 3세는 어린 시절부터 읽고 쓰기가 느린 데다가 정신 질환이 있었다고 해요. 1763년, 7년 동안 계속된 프랑스와의 식민지 쟁탈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부닥치게 되었어요. 그는 조지 그렌빌을 수상으로 임명하고, 중상주의 경제정책을 실시했어요. 중상주의는 식민지를 최대한 이용해서 본국이 최대한 이익을 얻도록 하는 정책이에요. 아메리카 식민지 입장에서 봤을 때, '참을 수 없는 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죠. 설탕법으로 영국에서 수입하는 설탕 이외의 다른 설탕은 거래가 금지되었어요. 아메리카에서는 화폐를 발행할 수 없다는 화폐법도 생겼지요. 1765년에 만든 인지법은 신문, 달력, 팸플릿, 면허장, 증서, 유언장 등 다양한 종류의 인쇄 문서에 세금을 내도록 했어요. 영국이 가져가는 세금은 이전과 비교하면 10배나 증가했어요. 식민지인들은 분노했고, '식민지 의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탄원서를 영국 왕에게 보냈어요. 결국 그렌빌 수상이 물러났지만, 중상주의 정책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법은 얼마든지 만들면 그만이었죠. 바로 차(茶)에 대한 관세가 문제였어요.

식민지인들은 영국처럼 차를 마시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어요. 물론 차를 수입하고 판매하는 상인도 많았고요. 그런데 영국에서 새로운 법을 발표한 거예요. 일명 차세법(Tea Act).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차를 수입하는 상인은 관세를 내야 하지만, 영국 동인도회사는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법이죠. 당연히 동인도회사의 제품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면서 상인들의 불만은 폭발했어요. 1773년 12월 인디언으로 변신한 50여명의 사람이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이던 동인도회사의 배에 올라탔어요. 그리고는 300여 상자의 차를 바다를 향해 던졌어요. 비릿한 바다 냄새는 씁쓸한 홍차의 향으로 뒤덮였을 거예요. 이것이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이랍니다. 보스턴 차 사건에서 사람들이 요구했던 것은 독립은 아니었어요. 그들은 어디까지나 식민지에 사는 이민 2세 혹은 3세였으니까요. 하지만 이후에 일어난 여러 사건을 연결해주는 첫 번째 고리가 되었지요.

미국의 독립 선언을 알린 ‘자유의 종’의 모습(아래 오른쪽). 영국의 식민지 조세 정책에 불만을 품은 미국인들이 일으킨 ‘보스턴 차 사건’을 표현한 그림(위). 그가 펼쳤던 식민지에 대한 과세를 계기로 미국의 독립을 불러온 영국의 국왕인 조지 3세(아래 왼쪽) 그림
미국의 독립 선언을 알린 ‘자유의 종’의 모습(아래 오른쪽). 영국의 식민지 조세 정책에 불만을 품은 미국인들이 일으킨 ‘보스턴 차 사건’을 표현한 그림(위). 그가 펼쳤던 식민지에 대한 과세를 계기로 미국의 독립을 불러온 영국의 국왕인 조지 3세(아래 왼쪽). /위키피디아

1774년 13개 지역의 식민지 대표들은 대륙회의를 열어 만약에 있을 영국의 공격에 대비해 민병대를 조직하기로 결의했어요. 이 무렵 패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기기도 했어요. 1775년에는 실제로 렉싱턴에서 영국군과 민병대의 충돌이 일어나 사망자가 발생했어요. 영국은 독일 용병을 끌어들였고, 식민지인들은 분노와 두려움이 교차했어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사람, 영국의 식민지로 남기를 원하는 사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으로 나누어져 분열되었어요. 토머스 페인은 '상식'에서 영국의 왕을 비난하면서 공화국으로 독립하자고 주장해서 큰 호응을 얻었어요. 점점 식민지인들의 마음이 독립으로 기울기 시작한 거예요.

1776년 7월 2일 독립을 결의하고, 7월 4일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서가 만들어졌어요. 미국은 이날을 독립기념일로 지키고 있어요. 이어서 7월 8일에는 필라델피아 광장에서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어요. 바로 그때 '자유의 종'을 울려서 독립의 시작을 시민에게 알렸다고 전해져요. 뉴욕 시민은 조지 3세의 동상을 녹여서 만든 총알로 전투에 참가했어요.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의 지원을 받아 독립전쟁은 계속되었어요. 요크타운 전투에서 거둔 큰 승리를 계기로 1783년 독립을 이루었어요.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어버린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를 개척하게 되었죠.

실제로 역사 속의 바로 그날 종이 울렸다는 기록은 없어요. 하지만 미국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 종을 울려 기념했어요. 1837년 노예제도 폐지론자들이 '자유의 종'이라 이름 붙이고 나서 미국 독립과 차별 없는 세상의 상징으로 사랑받고 있지요. 1846년 조지 워싱턴의 생일을 기념하면서 치다가 심하게 금이 가서 지금은 비록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말이죠.

공미라·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