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미술관에 갔어요] 달빛 아래 고궁, 화려한 색채를 품다
입력 : 2015.06.26 03:09
[사석원 고궁보월展]
궁궐 거닐다 예술적 영감 받은 작가… 궁에 살던 조선 왕의 모습 상상하며
창덕궁 안, 수사슴·토끼·연꽃 등 동식물로 상징화해 그려냈어요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둑해진 학교 뒷길을 걸을 때나 다양한 상품이 진열된 수퍼에서 물건을 고를 때, 여기저기서 감시 카메라(CCTV)의 눈이 우리를 찍고 있으니까요. 감시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는 어떠했을까요? 그 오랜 세월, 수많은 사건을 마치 감시 카메라인 양 구석구석 바라보는 존재가 있었지요. 그것은 바로 달님이에요. 그림의 소재를 찾아 달의 그림자를 따라 걷던 한국화가 사석원은 말합니다. "달이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 세상 최초이자 최고의 고화질 감시 카메라입니다. 역사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능열쇠인 셈이지요"라고요.
사석원은 예술적 영감을 얻고자 어렸을 때부터 역사의 현장인 고궁을 찾아 몇 번이고 거닐어 보았어요. 마치 명탐정이 된 듯 '이곳에서 왕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산책을 했을까' 상상하면서요. 궁궐에는 겹겹의 시간이 스며 있었어요. 그곳을 거쳐 갔던 여러 왕의 모습이 간간이 그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지요. 그는 '고민이 많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조선의 왕들이 궁궐 마당에 나와 저 달을 올려보았겠지?'라고 생각했지요. 어쩌면 그들은 한숨 섞인 혼잣말을 했는지도 모르죠. 왕은 자신이 달을 본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은 달이 왕을 보는 것이에요. 왕이 눈치채지 못하게 언제나 한결같은 시선으로 말이지요.
휘영청 밝은 달 아래에서 고궁을 거닐던 조선의 왕을 만날 수 있는 사석원 작가의 '고궁보월(古宮步月·옛 궁에서 달의 그림자를 밟다)' 개인전을 찾아가볼게요.
사석원은 예술적 영감을 얻고자 어렸을 때부터 역사의 현장인 고궁을 찾아 몇 번이고 거닐어 보았어요. 마치 명탐정이 된 듯 '이곳에서 왕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산책을 했을까' 상상하면서요. 궁궐에는 겹겹의 시간이 스며 있었어요. 그곳을 거쳐 갔던 여러 왕의 모습이 간간이 그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지요. 그는 '고민이 많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조선의 왕들이 궁궐 마당에 나와 저 달을 올려보았겠지?'라고 생각했지요. 어쩌면 그들은 한숨 섞인 혼잣말을 했는지도 모르죠. 왕은 자신이 달을 본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은 달이 왕을 보는 것이에요. 왕이 눈치채지 못하게 언제나 한결같은 시선으로 말이지요.
휘영청 밝은 달 아래에서 고궁을 거닐던 조선의 왕을 만날 수 있는 사석원 작가의 '고궁보월(古宮步月·옛 궁에서 달의 그림자를 밟다)' 개인전을 찾아가볼게요.
화면 앞쪽을 커다랗게 차지하는 것은 수사슴이에요. 양쪽으로 뻗어 올라간 뿔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게 위엄이 있고 기품까지 넘치네요. 그렇다면 이 사슴의 관(뿔)은 왕관을 비유하는 게 아닐까요. 그 위에는 부엉이가 일곱 마리나 앉아 밤새 눈을 또랑또랑 뜨고 지혜를 모으고 있군요. 왕이 현명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아닐까 해요.
그러나 궁궐은 항상 평화로운 곳만은 아니에요. 가장 높은 자리는 언제나 노리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왕좌에 오른 이후로 왕은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답니다. 가끔은 마음 편하게 뛰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지도 모르죠. 작품2는 창덕궁의 토끼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림이에요. 폴짝폴짝 숲을 뛰어다니며 맘껏 풀을 뜯는 토끼의 모습이 자유로워 보입니다. 1795년에 정조가 외삼촌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 있어요.
"내가 세손으로 있을 때 때때로 몰래 대궐을 빠져나와 유람할 때면 늘 외삼촌과 함께 다니곤 했지요. 가을날 문득 대궐 안에 오뚝하게 앉아 있자니 사방산에는 단풍과 국화가 한창이라 도봉산에 노닐던 지난날과 다름이 없습니다. 딴은 예전에 있었던 일을 추억하는 것이지만 이제 다시 예전처럼 노닌다 한들 그 옛날과 같은 기분이 날까요? 그저 한없이 부러워만 할 뿐입니다."
그림 속의 토끼는 철없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정조의 마음을 대신하는 것 같네요.
이번에는 작품3을 보면서 창덕궁 애련정으로 걸어가 볼까요? 애련정은 연꽃이 피는 연못에 세워진 정자인데, 17세기 말에 숙종 임금이 좋아했던 곳이랍니다. 더러운 물속에 뿌리를 두면서도 항상 맑고 깨끗함을 유지하는 연꽃을 보며 숙종은 그 고결함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고 해요. 그림의 주인공은 연꽃이 아니라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고 연못을 바라보는 흰 공작이에요. 깃털에 자부심이 높은 새랍니다. 하지만 공작의 화려한 꼬리 깃털은 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속 없는 허세를 뜻하기도 하지요. 그런 면에서 연꽃과 공작은 닮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속은 알 수 없으나 남들 보기에 겉은 지극히 우아하니까요. 궁궐에서의 삶도 겉은 멋지지만 속은 외롭지 않았을까요. 그 비밀은 오직 달님만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문의: 가나아트센터(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