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상을 바꾼 리더] 전쟁도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던 이탈리아 '전설의 여기자'
[71] 오리아나 팔라치
- ▲ 20세기 후반 화려한 명성을 누린 종군기자, 전문 인터뷰 기자, 소설가인 오리아나 팔라치. /위키피디아
오리아나 팔라치(1929~2006)는 '전설적인 여기자'라 불려요. 20세기 가장 유명한 언론인이자 인터뷰를 잘하는 사람으로 손꼽히기도 하죠.
오리아나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어요. 책을 좋아하고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많은 책을 읽으며 불의에 당당히 맞설 줄 알았어요.
그가 열 살이 되던 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 성장기를 폭격과 총성 속에서 보내야 했어요. 특히 전쟁을 일으킨 파시스트 정부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죠. 자유를 소중히 여기던 오리아나의 부모님은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는데, 어린 오리아나도 부모님의 뜻을 존중했어요.
오리아나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도우면서 맞서 싸울수록 용기는 배가 되고 두려움은 점점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전쟁이 끝나고 피렌체대학에 입학한 오리아나는 언젠가 소설가가 돼 세상에 이름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다친 다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상황에 놓였죠. 오리아나는 이 일을 오히려 자신의 꿈을 이룰 기회로 삼았어요. 어린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죠. 오리아나는 돈을 벌면서 글도 쓸 수 있는 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무작정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어요.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어린 나이에 여자라는 약점이 있었지만 결국 오리아나는 신문사 시험에 통과해 기자가 됐어요.
마치 소설처럼 재미있게 쓴 그녀의 기사는 점점 큰 인기를 얻게 돼요. 이후 그녀는 이탈리아 최고의 주간지인 '레우로페오'의 기자가 됐어요. 여기서 그는 종군기자로서 뛰어난 활약을 해요. 종군기자는 군대를 따라 전쟁터에 참여해 전투 상황을 취재하는 기자예요. 오리아나는 '죽어도 좋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쓰면서까지 전쟁터로 떠났지요.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아프가니스탄 내전, 걸프전쟁 등 많은 전쟁의 전선을 누비며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했죠. 그러나 온몸으로 전쟁을 겪으며 쓴 기사들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어요.
그러던 중 오리아나 팔라치는 그리스의 시인이자 반독재 혁명가인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를 인터뷰해요.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독재자를 겨냥해 폭탄을 터트리지만, 실패하고 체포돼 혹독한 고문에 시달렸어요. 오리아나는 알렉산드로스를 인터뷰하며 호감을 느꼈어요. 과거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였던 오리아나와 독재에 저항하는 민족운동가인 알렉산드로스는 공통점이 많았고, 곧 그들은 사랑에 빠져요.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의문의 사고로 사망하고, 오리아나는 그와의 추억을 글로 승화시켜 '한 남자'라는 소설을 출간해요. 이 소설은 문학성을 인정받으며 큰 인기를 얻게 돼요.
이후 오리아나는 인터뷰 전문 기자로 활약해요. 곧 명성이 자자해져 '오리아나 팔라치와 인터뷰하지 않았다면 세계적인 인물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오리아나가 특히 관심을 가진 인물들은 권력자들이었어요.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며 그 민낯을 드러내는 그녀의 인터뷰 방식은 '오리아나 팔라치 스타일'로 유명해졌답니다. 오리아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은 왜 태어나는지, 그리고 왜 죽어야 하는지 누구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죽어서 신을 만난다면 제 마지막 인터뷰 상대는 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1분 상식] '한 남자'라는 소설은 어떤 작품인가요?
한 남자는 오리아나 팔라치가 그의 연인이었던 그리스의 저항 운동가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를 소재로 한 소설이에요. 오리아나는 정의와 자유를 위해 외롭고 끈질기게 싸운 한 혁명가의 삶을 통해 잘못된 정치를 고발하고 진실을 옹호했어요. 그는 알렉산드로스가 정부의 부패를 추적하던 중 의문의 사고를 당해 죽자 오랜 시간 동안 작은 골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고 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