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교과서 여행] 독립 외치던 김구 선생 일대기가 한눈에… 백범일지도 볼 수 있어요
입력 : 2015.06.24 03:08
[121] 백범 김구기념관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여기 평생 '대한 독립'을 소원하던 사람이 있어요.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죠. 오는 6월 26일은 김구 선생이 경교장에서 당시 육군 포병이었던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날이에요. 오늘은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살펴볼 수 있는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백범 김구기념관에 가보려고 해요. 2002년 개관한 이곳은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독립운동사를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기념관에 들어서면 1층 로비에 커다란 태극기 앞에 김구 선생 좌상이 있습니다. 입구에는 김구 선생의 글 '나의 소원' 중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어요. 전시관 1층에서는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연보, 영상으로 보는 생애와 사상을 알 수 있는 영상실, 선생의 어린 시절, 동학농민운동과 의병 활동을 한 자료들이 있어요.
기념관에 들어서면 1층 로비에 커다란 태극기 앞에 김구 선생 좌상이 있습니다. 입구에는 김구 선생의 글 '나의 소원' 중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어요. 전시관 1층에서는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연보, 영상으로 보는 생애와 사상을 알 수 있는 영상실, 선생의 어린 시절, 동학농민운동과 의병 활동을 한 자료들이 있어요.
- ▲ 백범 김구기념관 1층에 있는 김구 선생 좌상(왼쪽). 백범 김구기념관에 전시된 보물 제1245호 백범일지의 모습. /임후남 제공
그가 일본인을 죽인 것은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였죠. 이 일로 선생은 3개월 후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지만 집행 직전 고종의 특사로 사형이 정지됐죠. 그렇지만 풀려나지 못하고 계속 감옥에 있게 되자 김구 선생은 탈옥했어요. 이곳저곳을 숨어 다니다 충남 공주에 있는 마곡사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죠. 스님일 때 이름은 원종. 마곡사에는 김구 선생이 머리를 깎았다는 바위와 산책로 등이 있어요.
김구 선생의 감옥 생활은 한 번이 아니었어요. 독립운동에 투신한 선생은 '안악 사건'과 '양기탁 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체포돼 또 한 번의 옥고를 치르게 돼요. 당시 김구 선생은 항일 비밀 결사 단체인 신민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일제는 보안법이라는 명분으로 신민회원들을 잡으려 했거든요. '안악 사건'이란 안명근 선생이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자금을 모집했는데 일제는 그것을 데라우치 총독을 암살하기 위한 군자금이라고 날조해서 무려 160명을 검거한 것을 말해요. 안명근은 우리가 잘 아는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이에요. '양기탁 보안법 위반 사건' 역시 안창호 선생 등과 같이 신민회를 조직한 양기탁 선생을 일제가 만든 보안법으로 옭아매기 위한 것이었죠. 당시 신민회에서 활동하던 김구 선생은 이 사건으로 4년 8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죠. 이때 선생은 이름과 호를 바꿨어요. 어린 시절 창암이라고 불렸던 이름을 동학에 들어가 창수로 바꿨는데, 일제의 호적에서 이탈한다는 뜻으로 다시 '구(九)'로 또 바꿔요. 호 역시 '백범'으로 바꿨는데, 이는 가축 잡는 백정과 범부(평범한 사람)도 애국심이 자기만 하기를 바란다는 뜻이에요.
기념관 2층은 3·1운동이 일어나고 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상해로 떠난 다음의 활동에 대해 자세히 전시돼 있어요. 특히 이곳에서는 '백범일지' 사본을 볼 수 있어요. 기념관 옆에는 김구 선생 묘도 있고요. 또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삼의사(윤봉길·이봉창·백정기) 묘 등도 있으므로 함께 둘러보면 좋아요.
[1분 상식] 을미사변이란?
1895년 을미년에 일어난 사변으로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라고도 해요. 일본공사 미우라가 낭인(일본의 떠돌이 무사)들을 시켜 우리나라 궁궐인 경복궁에 침입,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워버린 사건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