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책으로 보는 세상] 쓸모없는 것, 다 사라져야 맞는 걸까

입력 : 2015.06.24 03:08

[72] 박완서 '시인의 꿈'

사람 하는 일, 쓸모 따라 나뉜 세상
'시 쓰기' 쓸모없다고 금지 시켜… 시인 할아버지 낡은 집서 홀로 살아

소년, 그와 시에 대한 얘기 하며 마음 채우는 일 중요하단 것 깨달아

주위를 둘러보면 시를 외우고 있거나 시집을 읽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요.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시집이 사라진 지는 오래전 일이 되었죠. 그렇다면 시는 쓸모없는 것이기 때문에 점차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걸까요? 많은 작품을 통해 여성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손꼽히는 박완서(1931~2011)는 단편소설 '시인의 꿈'을 통해 이렇게 묻고 있어요.

"시가 정말 쓸모없는 거라면 없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우리 엄마가 아이들한테 제일 많이 하는 잔소리도 '쓸모없는 건 제때 내버려라'인걸요."

[책으로 보는 세상] 쓸모없는 것, 다 사라져야 맞는 걸까
/그림=이병익
작품에서는 시를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 금지하는 세상을 전제로 하고 있어요. 이야기는 집이란 집은 모조리 아파트로 변한 아주 살기 좋은 도시에 바퀴 없는 낡은 자동차 모양 속에서 한 할아버지가 사는 것을 어느 소년이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해요. 소년은 그곳에서 책 한 권을 펼쳐 보아요. 할아버지의 책 속에는 수백 수천 가지 곤충이 있었고, 그것들은 각기 제 나름으로 아름다웠어요. 소년은 학교에서 곤충에 대해 배운 적은 있으나,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소년은 할아버지에게 물었어요.

"할아버지, 이 아름다운 것들은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곤충을 이로운 곤충과 해로운 곤충으로 제 맘대로 나누다 보니 곤충이 멸종해 버렸고, 그때 곤충을 두 패로 나누듯이 사람이 하는 일도 사람을 잘 살게 하는 데 '쓸모 있는 일'과 '쓸모없는 일'로 나눴다고 말해요. 소설 속 세상에서는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을 금지하다 보니 시인이던 할아버지는 시를 쓸 수가 없게 되어 판잣집과 같은 곳에서 쓸쓸히 살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몸을 잘 살게 하는 데 쓸모 있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잘 살게 하는 데 쓸모 있는 건 무시하려 들었으니까. 시가 있었으면 지금보다는 살맛이 있었을 거야. 살맛이란, 나야말로 남과 바꿔치기할 수 없는 하나뿐인 나라는 것을 깨닫는 기쁨이고, 남들의 삶도 서로 바꿔치기할 수 없는 각기 제 나름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 아껴 주고 사랑하는 기쁨이란다."

동화‘시인의 꿈’의 저자 고(故) 박완서 작가예요.
동화‘시인의 꿈’의 저자 고(故) 박완서 작가예요. ‘시인의 꿈’은 단편집‘자전거 도둑’안에 실려 있어요. /주완중 기자
소년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말해요. 할아버지는 시인의 꿈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라고 말하며 소설은 끝이 나지요. 자, 그럼 이제 우리 현실로 돌아와 볼까요? 소설 속에서는 시를 쓸모없는 것이라 여겨 금지했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아직' 시가 남아 있어요. 쓸모없는 건 제때 내버려야 하는 세상에서 아직 시가 남아 있다는 것은 시가 쓸모없는 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시는 어떤 쓸모가 있는 걸까요? 소년의 울렁거리는 가슴과,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어요.

"지금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상앗빛 신발장을 의심하지 않지? 그러나 시를 읽는 사람이 생기면 그걸 의심하는 사람도 생길 거야. 나는 상앗빛을 좋아하나? 아닌데 나는 노랑을 좋아하는데, 그러면서 어느 날 노란색 페인트를 사다가 자기만의 신발장을 갖는 사람이 생겨난단 말이다. 물론 파랑, 빨강 신발장을 갖는 사람도 생겨나지."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너무 둔감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소설가 김영하는 "시는, 시인은, 인간이 놓치는 '공간, 시간의 틈, 세계(세상)의 빈틈'을 포착하는 것, 또는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천편일률적인 삶이 얼마나 황망하고 부자연스러운지 깨닫고 자신만의 개성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더 풍요로워질까요?

#이야기

이창동 감독도 영화 '시(詩)'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시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어요. 주인공 미자의 손자는 몇몇 친구와 한 여학생을 성폭행했고, 그 때문에 여학생은 자살해요. 그리고 그즈음 미자는 근처 문화센터에서 시 수업을 듣기 시작해요. 한편, 다른 가해자의 학부모들은 가난한 여학생의 부모에게 돈을 모아 합의금을 주자고 해요. 신고를 하지 않으면 가해 학생들은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지요. 평범한 삶을 살던 미자는 시를 쓰며 세상이 아름다운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이 있음을 알게 되어요. 그리고 결국 미자는 손자를 신고하고, 마지막 수업에서 시 한 편을 남겨 놓고 사라져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시를 쓴다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쓴다고 마음을 먹는 게 더 어려운 거죠." 시를 쓰려는 마음, 용서를 구하는 마음, 위로하려는 마음이 더없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몸이 잘 사는 것'과 '마음이 잘 사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 보아요.

양미연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