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진으로 보는 세계] 다른 이념 때문에 생긴 흔적, 사라질 '그날' 염원해요
아래 사진 속 검문소 앞에 서 있는 군복 차림 청년들이 미국과 옛 소련 국기를 들고 다정히 대화를 나누고 있네요. 진짜 군인이라고 하기엔 조금 낯설어 보이는 이들은 사실 이곳에서 돈을 받고, 관광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연기자들이에요.
이들이 서 있는 곳은 동서로 나뉘었던 베를린의 견고한 장벽을 넘나들 수 있는 여러 국경 검문소 중 하나인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예요. 한때 미국과 소련의 탱크가 마주 보며 대치했던 장소이지요. 냉전 시대 소설이나 영화 배경으로 자주 등장했던 곳이기도 해요. 현재 이곳은 베를린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관광지 중 하나가 됐어요.
- ▲ 독일 베를린 장벽에 있었던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 /한성필 사진작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시민 손에 붕괴하기 전까지 오랜 기간 이곳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비운의 장소였어요. 처음 이곳에는 낮은 철조망과 바리케이드가 놓여 누구나 쉽게 건너갈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경제적으로 낙후한 수많은 동독 시민이 풍요로운 서독으로 탈출하는 사건이 빈번해지자 동독 측은 점차 높고 견고한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했지요. 누구도 원치 않았던 벽은 서로 다른 이념 때문에 순식간에 높이 올라갔고, 이후 이곳은 자유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건 수많은 사람의 흔적을 간직하게 되었죠. 베를린 장벽이 해체될 때까지 자유를 찾아 장벽을 넘은 동베를린 주민은 5000여 명이며, 장벽을 넘는 도중 사망한 수만 해도 230여 명에 달한다고 해요.
베를린 장벽은 독일 통일 후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일부는 베를린 시내에 남아있어요.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차로 1시간 남짓 떨어진 슈프레 강가의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는 세계에서 가장 긴 1.3㎞ 길이 야외 미술관이 됐어요. 1990년부터 예술가 120명 안팎이 남은 장벽 위에 거대한 벽화를 함께 그리면서 유명해졌지요. 이제 이곳의 장벽은 자유를 찾아 넘어야 할 분단의 상징물이 아닌 분단의 역사가 그려진 문화유산으로 변했어요.
- ▲ 임진각 근처 민통선의 철책 위에 설치된 김승영 작가의 작품 'DMZ'. /한성필 사진작가
우리나라에도 과거 베를린 장벽처럼 분단의 상징인 DMZ(비무장지대)가 있어요. 이곳을 넘어 임진각 근처 민통선(민간인 통제 구역) 철책 위에는 2013년부터 해마다 여러 예술가가 참여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죠. 가시가 돋친 철조망 위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의 음표가 걸려 있는 작품이 보이네요. 또한 이곳에서는 3월부터 11월까지 매월 넷째 주 일요일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설치된 작품을 볼 기회도 제공한다고 해요. 통일을 염원하는 이 철책 위의 전시는 해마다 그 길이를 조금씩 늘여가고 있으며,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이 더 필요 없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 해요.
독일 통일 후 우리나라는 서로 다른 이념으로 갈라진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었지요. 올해로 분단 70년을 맞았네요. 철책을 넘어 남북 주민들이 자연스레 왕래하는 날이 언제쯤 오게 될까요? 우리가 넘어서야 할 분단의 상징물이 어서 빨리 통일이 돼 없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