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아스텍 왕국, 천연두로 무너지다

입력 : 2015.06.19 03:07

[역사 속 전염병]

아스텍 침략한 에스파냐 소수 군대
전쟁 도중 퍼진 천연두 바이러스로 수많은 아스텍인 죽자 승리하게 돼
전염병과 전쟁하는 인간의 역사…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요

메르스 바이러스가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어요.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며 호흡이 곤란해지는 증세를 보이는데, 명확한 감염 경로를 모르기 때문에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도 개인 위생이 강조되고 있지요. 일부 학교는 휴교하거나,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을 지도하기도 해요. 메르스 이전에도 조류인플루엔자나 신종 플루의 유행으로 수학여행, 체육대회 등 대규모 학교 행사가 취소된 경험이 있을 거예요. 뭐 이렇게 짧은 기간에 전염병이 자주 발생하나 싶겠지만, 사실 인간의 역사는 전염병과 벌인 끝없는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천연두, 콜레라, 페스트, 결핵, 말라리아, 에이즈, 인플루엔자 등 잊을 만하면 새로운 질병이 등장해왔어요. 이 중 '두창'이나 '마마' 또는 '손님'이라고도 부르는 천연두는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뒤바꿔 놓은 대표적 전염병이에요.

고대 아스텍 문명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의 모습으로 이후 이 일대는 멕시코시티가 됐어요. 에르난 코르테스의 침략 땐, 철저히 약탈당한 곳이죠.
고대 아스텍 문명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의 모습으로 이후 이 일대는 멕시코시티가 됐어요. 에르난 코르테스의 침략 땐, 철저히 약탈당한 곳이죠. /Corbis/토픽이미지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를 간직한 곳은 멕시코 고원에 있는 아스텍이었어요. 아스텍의 전설에 따르면, 지혜의 신 '케찰코아틀'이 사람을 창조했다고 해요. 케찰코아틀은 뱀 몸통에 노란 머리를 하고, 흰 얼굴에는 수염을 기른 야릇한 모습을 했어요. 다른 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그는, 큰 새를 타고 돌아오겠다는 예언을 남기고 동쪽 바다로 떠나버렸대요. 하지만 농사짓고, 쇠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큰 어려움 없이 먹고살 수 있었어요. 이웃 부족과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거나 연합하면서 큰 제국을 만들어나갔어요. 마야 문명을 계승해서 달력과 문자를 만들고, 피라미드 모양 신전에서 지혜의 신을 기다리며 제사를 지냈어요.

바로 그 무렵, 대서양을 건너 동쪽 에스파냐는 모험의 열기로 들썩거리고 있었지요. 콜럼버스의 신항로를 따라 아메리카 대륙에 가면 황금을 얻을 수 있다는 야심가들 때문이었어요. 에스파냐의 귀족 출신인 에르난 코르테스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쿠바 총독의 일을 돕던 그는 500여 병사와 말 16필을 이끌고 야심 차게 멕시코 원정길에 올랐어요. 드디어 1519년 수백만의 인구를 자랑하는 거대한 아스텍 왕국에 도착했어요.

16세기 초 에스파냐 병사들이 아스텍 왕국의 테노치티틀란을 침입했을 때의 모습을 담은 그림(위). 천연두로 인해 죽은 아스텍인의 모습이에요(아래 왼쪽). 아스텍 왕국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아래 오른쪽).
16세기 초 에스파냐 병사들이 아스텍 왕국의 테노치티틀란을 침입했을 때의 모습을 담은 그림(위). 천연두로 인해 죽은 아스텍인의 모습이에요(아래 왼쪽). 아스텍 왕국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아래 오른쪽). /위키피디아

호수 가운데 떠 있는 섬들을 연결해서 만든 테노치티틀란에서 바라보던 황제 몬테수마 2세는 깜짝 놀랐어요. 돛을 높이 단 코르테스의 배가 날개를 활짝 편 새처럼 보였거든요. 하얀 얼굴에 금발을 휘날리는 코르테스의 모습은 마치 전설 속의 케찰코아틀 같았죠. 황제는 성문을 열고 환영 인사를 보냈어요. 정말로 착각을 한 건지, 아니면 에스파냐 사람들의 위용에 놀라서 두려웠던 건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르테스의 속셈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코르테스가 황제를 인질로 잡고, 복종과 황금을 요구했기 때문이에요. 도시 가운데에는 신전 대신 성당을 짓도록 했죠.

코르테스의 행동에 화가 난 사람은 쿠바 총독이었어요. 명령을 어기고 주어진 임무를 벗어나 아스텍까지 가버린 그를 용서할 수 없었지요. 이 소식을 들은 코르테스는 부하들에게 테노치티틀란을 맡기고, 싸움터를 향해 갑니다. 그러고는 쿠바 총독이 보낸 원정대까지 자기편으로 만들어 의기양양하게 아스텍에 돌아왔어요. 그러나 뜻밖에도 아스텍 사람들의 반란으로 오히려 자신의 부하들이 내쫓겨 있는 상황이었어요.

적은 군사로 30배나 많은 아스텍 군대를 어떻게 이겨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또 한 번 반전이 일어났어요. 원정대에 속해 있던 노예 중 천연두 환자가 섞여 있었던 거예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아스텍 사람들에게 천연두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어요. 열이 나고, 특히 얼굴과 온몸에 물집이 잡히더니 순식간에 고름이 차올랐어요. 시름시름 앓던 아스텍 사람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이 사망하는 재앙이 벌어졌어요. 운 좋게 살아남는다고 해도 고름이 있던 얼굴에 움푹 파인 흉터를 남겼어요. 에스파냐 사람들은 이미 기원전부터 겪어왔던 전염병이라 면역이 있었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아스텍 사람들은 처음 겪는 바이러스의 침공이었거든요. 결국 1521년 아스텍 문명은 정복당하고 폐허가 되었어요. 자신을 '멕시카(Maxica)'라고 부르던 아스텍 왕국은 오늘날의 멕시코가 되었고, 테노치티틀란이 있던 호수는 흙으로 메워져 멕시코시티가 되었답니다.

오늘날 페루에 있는 잉카문명 역시 168명밖에 되지 않는 피사로의 군대에 맥없이 사라지고 말았어요. 아스텍과 잉카 문명이 몰락한 까닭은 기마 부대의 기동성, 총이나 창과 같은 강력한 무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천연두 바이러스의 무서운 전염성이 더해졌기 때문이에요. 이후에는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에게까지 치명적 피해를 남겼지요.

1796년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한 종두법이 보편화하면서, 1980년 5월에 '천연두는 지구에서 사라졌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가 있었어요. 문명을 파괴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유럽인의 땅으로 만들 만큼 위력을 지닌 천연두 바이러스도 결국은 인간에게 정복당한 셈이지요.

 

공미라·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