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상을 바꾼 리더] 논리·철학·수학 등… 여러 분야 연구한 '20세기 대표 지성인'
입력 : 2015.06.18 03:07
[70] 버트런드 러셀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하게 활동한 인물로 꼽혀요. 그는 유명한 수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철학, 과학,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해 책을 40여 권 남겼어요. 1950년에는 뛰어난 문장력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했죠.
그는 할아버지가 영국 수상을 두 차례나 지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어요. 하지만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네 살 때 아버지도 떠나보내는 불행을 겪었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러셀은 늘 저택의 정원에서 보냈어요.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정원을 돌아다니며 동식물을 관찰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 샛별을 보거나 해돋이를 봤어요. 그 밖에는 주로 책을 읽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셰익스피어, 밀턴 등 영국의 대표적 문학 작품을 읽으며 글솜씨를 다질 수 있었어요.
그는 할아버지가 영국 수상을 두 차례나 지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어요. 하지만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네 살 때 아버지도 떠나보내는 불행을 겪었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러셀은 늘 저택의 정원에서 보냈어요.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정원을 돌아다니며 동식물을 관찰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 샛별을 보거나 해돋이를 봤어요. 그 밖에는 주로 책을 읽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셰익스피어, 밀턴 등 영국의 대표적 문학 작품을 읽으며 글솜씨를 다질 수 있었어요.
- ▲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이자 문학가이기도 했던 버트런드 러셀. /Getty Images 멀티비츠
그는 철학과 수학을 연구하면서, 수학이 논리학의 기초 위에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스승인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의 원리를 논리 개념으로 증명해 재구성하려고 시도해요. 그리고 1910~1913년에 그런 노력을 집대성한 도서 '수학 원리'를 출간하죠. 이 도서를 통해 러셀은 논리학과 수학, 철학 분야에서 큰 명성을 얻을 수 있었어요. 러셀은 이렇게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조금씩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죠.
당시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에게는 정치에 참여할 권리인 참정권이 없었어요.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러셀은 여성 참정권 협회에 가입했고 1년여 동안 협회 활동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고민했죠. 그는 여성 참정권 문제를 알리고자 하원의원 선거에도 나갔어요.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는 강제 징집에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전쟁은 1918년에 끝났지만, 러셀의 삶은 그 때문에 크게 달라졌어요. 일단 소재가 다양한 책을 쓰기 시작했죠. 행복관에 대해 쓴 '행복의 정복', 신학과 과학 사이의 갈등을 소개한 '종교와 과학' 등 여러 분야를 다뤘죠. 특히 러셀이 서양철학사의 주요 사상을 독특한 시각으로 소개한 '서양철학사'는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러셀은 또 한 번 생각에 잠겨요. 그는 이렇게 강력한 핵폭탄의 위력을 전 세계가 봤으니, 앞으로 핵폭탄을 만들려고 달려드는 나라가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했죠. 이후 러셀은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리기 시작해요. 러셀은 핵무기 없는 세상과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언문을 만들어 아인슈타인, 라이너스 폴링 등 당시 최고 과학자들에게 서명을 받았죠. 이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고, 그 영향으로 세계 각국 유명한 과학자들이 캐나다 퍼그워시에 모여 회의까지 했어요. 그 뒤 러셀은 정치나 종교적인 이유로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해 앞장서는 등 정의를 세우는 데 이바지했답니다.
[1분 상식] 퍼그워시 회의란 무엇인가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이 계기가 돼 1957년 7월, 캐나다의 퍼그워시에서 22명의 전문가가 모여 세계문제에 대해 회의했어요. 그들은 방사능의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핵실험을 중지해달라고 강대국에 요청했죠. 그 뒤 이 회의는 매년 한두 차례씩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열렸고, 1회 개최지의 이름을 따 '퍼그워시 회의'라 불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