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계유산 탐방] 히말라야 산기슭 불교의 성지… 부처의 숨결 느낄 수 있어요
[19] 네팔 룸비니
지난 4월 말 네팔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한 전 세계적인 구호의 손길이 계속되고 있어요. 네팔은 석가모니의 탄생지로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예요. '아시아의 평화와 빛의 사도'라고도 불리는 석가모니는 오늘날 네팔의 테라이 지방 남서부에 있는 '룸비니'에서 태어났죠. 하지만 정작 네팔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은 10%에 불과하고, 국민 대다수가 힌두교를 믿고 있어요.
네팔은 중국과 인도 사이에 있는 나라로, 히말라야 산맥 중앙부의 남쪽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요. 북부 산악 지대에는 에베레스트 산을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10대 산 중 8개가 모여 있어 해발고도가 높지요. 안타깝게도 이번 지진으로 인해 수도 카트만두의 더르바르 광장, 다라하라 타워를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파괴됐죠. 불행 중 다행으로 룸비니는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해요.
- ▲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의 모습이에요.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예요. /Corbis/ 토픽이미지
먼 옛날 룸비니는 사계절 내내 잎이 푸른 나무인 '사라수(沙羅樹)'가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이었다고 해요.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아이를 낳으러 친정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의 웅장한 자연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선 채로 늘어진 사라수 가지를 잡고 진통 끝에 석가모니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훗날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불교를 창시한 이래 수많은 순례자가 룸비니를 찾았어요. 독실한 불교도인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도 이곳을 순례했죠. 아소카 왕은 석가모니를 칭송하며 네 개의 불탑과 꼭대기에 말 모양이 조각된 석주(돌기둥)를 세웠어요. 석주에는 '신들의 사랑을 받는 파야다시 왕(아소카)이 재위 20년에 친히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을 방문하여 이곳에 돌난간을 만들고 기둥을 세웠다. 룸비니 마을의 세금을 감면하고 생산물의 8분의 1만 바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라고 새겨져 있어요. 그 후에도 중국의 승려인 법현, 현장 등이 룸비니를 순례하고 나서 자신들이 방문한 사원과 불탑, 건물 등을 기록으로 남겼어요.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순례자들이 찾지 않게 됐고, 불교 사원이 파괴되는 시련을 겪으면서 룸비니는 오랜 세월 방치된 채 폐허가 되고 말았어요.
- ▲ 아소카 왕이 부처의 출생 기념해 세운 돌기둥. /위키피디아
이후 1895년에 독일의 저명한 고고학자 포이러(Feuhrer)가 히말라야 산기슭의 작은 언덕을 거닐다 아소카 왕의 석주를 발견하면서 룸비니가 다시 세상에 알려졌어요. 이후 계속된 조사를 통해 국제적인 후원을 받으며 룸비니의 유적지가 복원됐죠. 1943년에 다시 세운 마야데비 사원은 석가모니의 탄생 장면을 묘사한 돋을새김으로 유명해요. 이 사원 남쪽에는 싯다르타 연못 혹은 푸스카르니 연못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낳기 전 목욕을 하고 갓 태어난 석가모니를 목욕시켰다고 알려진 성스러운 장소예요. 이처럼 석가모니의 탄생과 관련된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룸비니는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어요. 마야데비 사원이 세계적인 관심 속에 다시 세워진 것처럼, 이번 대지진으로 무너진 문화유산들도 그 모습 그대로 복원되길 간절히 바라요.
[1분 상식] 아소카 왕의 석주?
고대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은 자신의 가르침과 사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석주를 세웠어요. 기둥의 머리 부분에는 사자나 소 등의 동물상을 조각하였고, 아랫부분에는 글을 새겼지요. 사르나트에서 발굴된 석주의 사자상은 오늘날 인도의 상징이 되었답니다. 바위 조칙, 석주 조칙이라고도 하는 이 기록들에는 대부분 아소카 왕의 재위 기간에 일어난 사건, 그의 사상과 활동 등이 담겨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