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책으로 보는 세상] "적의 침략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70] 유성룡 '징비록'
임진왜란 전후 7년간 생생한 기록
이순신 활약, 피폐해진 백성의 삶… 당시 상황 객관적으로 표현했어요
전쟁 직감해 대비하자 주장했지만 침략 막지 못한 참회·반성 담고 있어
여러분은 전쟁이 일어나면 어떨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인 우리에게 전쟁은 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소재로만 생각될 거예요. 그러나 과거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요충지였던 탓에 주변 강국에 의해 잦은 침략과 약탈에 시달려야 했죠.
최근 한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징비록'이라는 드라마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었던 선조 임금과 조선 조정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선조 임금은 일본의 침략을 스스로 막아내려 하지 않고, 명나라에만 의존했어요. 또한 자신의 왕권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세자 광해와 바른말을 하는 대신들을 경계하는 데 바빴지요. 실제 선조 임금은 심신이 약한 편이었다고 해요.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조선을 유린하고 약탈하였으니 의지할 곳 없고 도망갈 곳 없는 백성은 굶주림 속에서 헤매야 했고 일부는 일본에 끌려가기도 했어요.
"3도를 짓밟은 적은 가는 곳마다 민가를 불태우고 백성을 죽였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을 붙잡기만 하면 코를 베어 위세를 부렸던 까닭에 그들이 직산에 도착할 무렵부터 사람들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 드라마는 실제 '징비록'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제132호로 지정된 '징비록'은 7년간의 전란을 겪고 나서 이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담고 있어요. '징비(懲毖)'라는 말은 '뉘우치고 조심하다'는 뜻으로 중국의 고전인 '시경'에서 유래했어요. 징비록의 저자인 유성룡(1542~1607)은 서문에서 "시경에 '지난날의 잘못을 거울삼아 후일에 일어날 환란을 경계하다'(예기징이비후환, 予其懲而毖後患)라는 말이 있으니 이것이 곧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라고 밝혔어요. 그는 국가의 중책을 맡았음에도 전쟁을 막아내지 못한 데 대해 반성하며 이 땅에 왜란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책을 썼다고 해요.
- ▲ 그림=이병익
그렇다면 유성룡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안동 하회마을에서 자란 유성룡은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대사헌과 경상도 관찰사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고, 임진왜란 극복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어요. 유성룡을 비롯한 몇몇은 당시 동북아의 불안한 정세와 일본의 전쟁 기운을 알고 있었다고 해요. 당시 율곡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던 것처럼 유성룡은 권율과 이순신을 조정에 천거하여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자고 역설했습니다.
"매사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더구나 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경우라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 만일 지금 준비하지 않는다면 후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략하기로 마음먹고 포르투갈로부터 조총을 수입해서 병사를 훈련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했어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그의 심복을 파견했는데, 사신으로 온 요시토시는 매우 거만한 태도로 조선의 병사들을 비웃었다고 해요. 이렇게까지 전쟁의 낌새가 있었음에도 조선은 제대로 방비를 하지 않은 것이죠.
'징비록'에서는 이렇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의 일, 그리고 정유재란의 발발과 7년간의 전란이 끝나는 날에 이르는 중요한 사건들을 모두 기록하고 있어요. 백성의 딱한 사정이라든지 수군통제사 이순신의 활약, 그리고 명나라와의 갈등 등 유성룡 스스로 보고 들은 바를 소상히, 그리고 상당히 객관적 시각으로 기록하고 있어요.
또한 '징비록'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구성으로 돼 있어 문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훌륭한 재상이었던 유성룡의 재능과 인품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랍니다.
#이야기
과거 외세로부터의 침략을 통해 육체적·정신적 억압을 받으면서도 우리나라는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임진왜란에 이어 또 한 번 일본에 침략을 당해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강점기에는 특히 뛰어난 독립투사가 많았어요. 그중 '백범일지'를 쓴 김구 선생은 나라의 군사적 힘보다는 문화적 힘을 강조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자원도 부족하고 영토도 작은 나라에서 똑똑한 사람이 많아야 미래에 더 부강한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서로 하는 말은 달랐지만 유성룡과 김구의 나라 사랑은 모두 애틋했어요. 백범일지에 담긴 김구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적의 외침을 꿋꿋이 물리치며 나라를 지켜온 조상 덕분이에요.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요?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이 하는 공부나 해야 하는 일들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도록 노력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