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교과서 여행] 조선시대 제주 행정의 중심지, 유배돼 가장 먼저 오는 곳이었어요

입력 : 2015.06.10 03:06

[120] 제주목 관아·관덕정

오늘은 국내이지만 이국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인 제주도를 찾아가 보려 해요. 일단 먼저 살펴볼 곳은 제주도의 많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인 관덕정(觀德亭)이에요. 1448년(세종 30년)에 세워진 관덕정은 보물 제322호로 지정됐죠. 관덕(觀德)이란 뜻은 평소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닦는다는 것이에요. 당시 제주 목사(牧使)였던 신숙청은 이 건물을 병사를 훈련하고 무예를 수련하기 위해서 지었죠.

관덕정 앞 양쪽에는 큰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입을 꼭 다문 돌하르방 두 기가 서 있어요. 돌하르방은 돌할아버지라는 뜻의 제주도 사투리예요. 제주도에만 있는 돌하르방은 육지에 있는 장승과도 같은 역할을 했는데, 현재 제주도에 있는 원조 돌하르방은 이곳에 있는 것을 포함해 45기가 있어요.

제주의 상징이라 불리는 관덕정 모습. 제주에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제주의 상징이라 불리는 관덕정 모습. 제주에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임후남 제공

관덕정 바로 옆은 제주목 관아예요. 관덕정도 사실은 제주목 관아의 일부지요. '관아'라는 단어를 보면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쉽게 짐작이 가죠? 제주목 관아는 오랫동안 제주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에요. 원래의 관아 건물은 조선시대인 1434년(세종 16년)에 불이 나 모두 타버렸던 것을 다음 해인 1435년에 다시 지은 것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모두 헐리고 말았어요. 일본은 그 자리에 콘크리트 건물을 짓고 제주도청, 제주도경찰서, 제주지방법원, 제주지방경찰청 등을 세웠죠. 오랫동안 잊혔던 관아 건물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이후 1998년까지 발굴 조사를 하고 200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어요.

관아로 들어가면 바로 왼편에 제주목 역사관이 있어요. 제주목을 테마로 한 역사 체험 전시관인 이곳은 제주목의 역사와 변천사, 이곳을 발굴할 때 나온 유물 등을 생생하게 전시하고 있어요. 역사관을 나오면 목사가 일을 하던 연희각, 군관들이 근무하던 영주협당, 잔치를 하고 공물을 바치던 우련당 등 여러 건물이 있어요. 특히 우련당 앞에 있는 연못은 성 안에 적이 침입하거나 화재가 났을 때를 대비해 만들었다고 해요.

이곳에서 가장 큰 건물은 2층짜리 망경루예요. 망경루는 서울 방향으로 서 있는데, 이 건물은 옛날 임금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그 은덕에 감사드리며 예를 올리던 곳이죠. 2층으로 올라가면 제주목 관아가 한눈에 내려다보여요. 지금은 오래된 건물들이 앞을 가리지만 옛날에는 이곳에서 제주 앞바다로 침범하는 왜구를 살필 수도 있었답니다.

망경루 1층에는 탐라순력도 체험관이 있어요. 탐라순력도는 제주 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인 이형상이 1702년 한 해 동안 제주도의 각 고을을 다니면서 거행했던 여러 행사 장면을 기록한 채색 화첩인데, 순력도라는 이름의 기록화로는 국내 유일한 것이라고 해요. 당시 상황을 그림으로 그리고 아래 간략한 설명까지 있어 당시 제주도의 모습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해요. 바로 이 그림 자료와 '탐라방영총람' 등 옛날 자료를 토대로 지금의 제주목 관아를 다시 만들 수 있었죠.

제주도는 옛날부터 가장 많은 사람이 유배를 왔던 곳이에요. 유배를 당한 사람이 제주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오는 곳이 바로 이곳 제주목 관아였어요. 제주목의 최고 통치 기관이었으므로 이곳의 목사에게 신고해야 했기 때문이죠. 유배를 온 사람 중에는 송시열, 이익, 김정희 등 한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적잖았어요. 그래서 제주에는 '제주 유배길'이 여럿 있는데 제주목 관아에서 출발해서 유배지를 둘러보고 오는 제주 성안 유배길도 있어요.

[1분 상식] 목(牧)이란?

목(牧)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큰 고을에 두었던 지방행정 단위예요. 983년(성종 2)에는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행정의 중심으로 삼았죠. 그러던 것이 현종 때 8목으로 줄었다가 조선시대 들어 20여개 목으로 다시 늘어나기도 했어요. 1895년(고종 32)에 전국을 8도로 나누고 부·목·군·현으로 나누었던 지방제도가 군으로 편성됨으로써 더는 목이란 이름을 쓰지 않게 됐어요.

임후남·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