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언제부터 로또 사며 '행운' 바랐을까

입력 : 2015.06.05 03:06

[복권의 역사]

로마 황제, 행운권 추첨 아이디어로 제국 유지하고 귀족에게 인정받아
이후 이탈리아·미국 등 복권 이용해 나라의 재정 보완했어요

1947년 발행된 '런던 올림픽 후원권'… 공식적인 국내 최초 복권이랍니다

학생들에게 유난히 가슴이 설레고 두근두근 거리는 날이 있어요. 성적표 받는 날도 그렇지만, 교실에서 자리를 바꾸는 날의 설렘에 비길 수 없죠. 교탁 바로 앞자리에 앉기를 희망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뒷문 옆에 앉고 싶어 하지요. 어떤 친구와 짝이 되어 앉는지에 대한 기대감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죠. 작은 교실이라 해도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원하는 자리에 앉도록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저마다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중 하나가 추첨이에요. 제비를 뽑거나 아니면 최신 유행하는 컴퓨터 자리 바꾸기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추첨을 통해서 자원을 나누는 방식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있었어요. 오늘은 인생을 역전시키는 추첨인 복권에 대한 살펴볼게요.

구약성서의 민수기에는 추첨에 대한 오래된 기록이 등장하고 있어요. 유대인들이 모세를 지도자로 삼아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맛보며 이집트를 탈출한 내용이 나와요. 하지만 그들은 농사지을 땅이 없으니 생활이 어려웠어요. 이때 모세는 인구를 조사하고 나서 추첨을 통해 요르단 강 근처의 땅을 나누어주었어요. 아마 그 당시 남들보다 더 기름진 땅을 차지하게 된 사람에게는 대박의 행운이었을 거예요.

복권의 시작은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요. 오랜 기간 제비를 뽑거나 추첨을 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왔어요. 그러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재정 마련을 위해 발행한 복권인‘lotto’에서 유래해 지금은‘로또’라고 불리고 있어요.
복권의 시작은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요. 오랜 기간 제비를 뽑거나 추첨을 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왔어요. 그러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재정 마련을 위해 발행한 복권인‘lotto’에서 유래해 지금은‘로또’라고 불리고 있어요. /Getty Images 멀티비츠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선물 추첨을 통해 제국을 유지하고, 황제로서 존경받기를 시도했어요. 로마의 첫째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농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축제일이면 많은 손님을 초대해서 잔치를 베풀었어요. 초대받은 사람들은 식사비를 내고 영수증을 받았는데, 영수증이 바로 선물을 추첨하는 행운권이었어요. 큰 경품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소소한 경품에 당첨되었기 때문에 행운권 아이디어는 재정적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어요.

황제의 입장에서는 귀족들과 오락을 즐기고, 수익금으로 부족한 세금도 채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지요. 네로 황제 역시 이런 방식을 아주 좋아했어요. 로마에 큰 화재가 나서 재정의 어려움을 겪을 때, 파티를 하며 수천 장의 행운권 이벤트를 개최했어요. 작게는 귀뚜라미 한 마리부터 노예, 부동산, 선박에 이르는 큰 경품이 100% 주어졌어요. 남은 돈은 로마를 재건하는 데 사용되었어요.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나서도 복권은 다양하게 이어졌어요. 특히 중세 유럽에서 도시와 상업이 발달하면서 화폐 경제의 성장과 함께 복권도 활발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했지요. 15세기 벨기에의 플랑드르에서는 항구 개발과 성당 건설, 가난한 사람 구제를 위해 복권을 발행했어요.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하수도를 정비하기 위해 발행한 복권 이름은 '로또(lotto)'였어요. 이탈리아어로 '행운'이라는 뜻이에요. 여기에서 유명한 로또복권의 명칭이 유래했어요. 그리고 영어로 복권을 'lottery'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는 당첨자에게 선물이 아닌 현금을 주기 시작했대요. 당시 이탈리아의 제노바 공화국에서는 매년 90명의 정치인 중에서 5명을 추첨해서 지도자를 선출했는데요, 우리가 아는 로또 복권의 방식은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우리나라의 로또 복권은 45개의 숫자 중 6개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지요. 중세 유럽에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만들어진 복권들 덕분에 많은 공공건물과 성당이 지어졌어요. 고딕 양식으로 유명한 독일의 쾰른 대성당 역시 이렇게 만들어졌지요.

(왼쪽 위)독일의 유명한 쾰른 대성당은 화재로 건물이 파손됐을 때,‘ 대성당 복권’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복구될 수 있었어요. (왼쪽 아래)우리나라에서 만든 최초의 공식 복권인‘런던 올림픽 후원권’. (오른쪽)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연회에서 선물을 추첨하는 행운권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나눠줬죠.
(왼쪽 위)독일의 유명한 쾰른 대성당은 화재로 건물이 파손됐을 때,‘ 대성당 복권’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복구될 수 있었어요. (왼쪽 아래)우리나라에서 만든 최초의 공식 복권인‘런던 올림픽 후원권’. (오른쪽)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연회에서 선물을 추첨하는 행운권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나눠줬죠. /조선일보 DB·위키피디아
복권 열풍은 전 세계로 확산했어요. 프랑스의 루이 15세,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부족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복권을 발행했죠. 미국 건국 과정에서도 복권은 큰 역할을 했어요. 벤저민 프랭클린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대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포를 사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복권을 발행했어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서부 개척시대에 복권 수익금으로 산맥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건설했어요. 미국을 대표하는 하버드·예일·컬럼비아·프린스턴·브라운 대학 등 유명한 대학들도 같은 방법으로 지원을 받아서 설립되었어요.

우리나라에서 만든 최초의 공식적 복권은 1947년에 만들어진 '런던 올림픽 후원권'이었어요.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나서 당당하게 독립국임을 알리기 위해서 올림픽에 도전했지만, 선수단의 식비나 교통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복권 1장의 가격은 100원. 1등 당첨금은 당시 집 한 채 가격이었던 100만원이었어요. 100원짜리 복권 한 장에 담긴 국민의 마음을 모아 67명의 선수단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어요.

물론 복권을 발행하는 기관이나 사는 사람이 모두 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나눔의 마음을 지닌 것은 아니에요. 이탈리아에서 복권은 도시 전체를 1등 당첨금으로 내 걸 만큼 사행성 도박으로 흐르기도 했고, 지나치게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했어요. 그 때문에 시대를 달리하며 종종 발행이 금지되었지요. 하지만 지금까지도 유행하는 건 적은 금액으로 당첨을 기다리며 그려보는 미래의 소망 때문이 아닐까요?

공미라 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