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탈북 교사의 북한 학교 이야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성 관리'… 북한 학생의 첫 일과랍니다
우리 친구들, 오는 6일이 무슨 날인지 다들 알지요? 바로 현충일(顯忠日)이에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애국선열과 국군 장병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선생님이 살던 북한에는 현충일이 없었어요. 인민 모두가 수령의 전사인 북한에서는 나라를 위한 헌신적 업적도,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바친 고귀한 생명도 수령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북한에서는 어릴 때부터 수령에 대한 '충실성 교양'을 잘해야 한다고 배워요. 충실성 교양이란 한마디로 수령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거예요. 수업은 물론이고 과외활동도 충실성 교양으로 일관돼 있죠. 소학교 학생과 중학생들의 첫 일과가 뭔지 아세요? 등교하기 전, 새벽 5시 반부터 아침 7시까지 지역마다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이나 우상화물을 청소하는 일이에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손에 빗자루를 들고 동상 청소를 해야 해요. 아침에만 하는 게 아니에요. 요즘처럼 몹시 더울 때에는 수업이 끝나고 전교생이 물통을 들고 동상 앞 잔디에 물을 주는 일을 매일같이 반복해요.
- ▲ 평양 만수대언덕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꽃을 바치는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이에요. 북한에서는 어릴 때부터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이 등교 전, 지역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청소한다고 해요. /조선중앙통신
동상 청소를 북한말로 '정성 관리'라고 해요. 이 '정성 관리'를 얼마나 했느냐를 선생님께서는 총화 시간(방과 후 담임선생님이 하루 일과를 마치며 훈화하는 시간)에 평가하기도 해요. 그러니 학생들의 마음속에 수령에 대한 억지스러운 충실성이 자리 잡게 되지요. 사회주의 북한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분들에 대한 고마움은 없게 돼요.
'정성 관리'가 보통 힘든 게 아니에요. 한창 곤히 자는 시간인 이른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만도 고되지만, 그것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것이 학생들을 더 힘들게 만들지요. 밖에 찬 바람이 쌩쌩 불고 굵은 빗방울까지 쏟아진다면 얼마나 더 힘들겠어요? 그것도 대부분 소학교 학생인 어린이들이 담당하지요.
북한 정부는 담임선생님에게 학생들의 정성 관리를 유도하라고 지시해요. 그래서 담임선생님은 정성 관리를 열심히 한 학생을 격려하고 칭찬하지요. 매일같이 '○○ 학생은 오늘 아침에도 충성의 마음을 안고 이른 새벽 제일 먼저 정성 관리에 나왔어요'라고 얘기해줘요. 어린 학생들을 자극하고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예요. 만일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떨까요? 물론 있을 수도 없거니와, 아마 부모님과 학생인권단체들이 교육청에 제기하고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질 거예요.
그런데 요즘 북한 학생들도 조금씩 변한다고 해요. 정성 관리에 참가하지 않는 학생이 늘어난 것이죠.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의 정성 관리 참가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아이러니한 것은 잘사는 집 아이일수록 참가율이 더 떨어진다고 해요. 각 도에 하나씩 있는 예술학원이나 외국어학원(우리의 경우, 특목중·고등학교에 해당)같이 간부 자식들이나 돈 있는 집 아이들의 경우, 정성 관리에 참가하는 확률은 월등히 떨어져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북한에서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강요당하는 일이 잦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