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미술관에 갔어요] 예술 속, 삶 속 '수퍼우먼'

입력 : 2015.05.29 03:07

[윤석남 ♥심장 展]

우리나라 여성주의 미술 이끈 작가
조선시대 김만덕·어머니의 모습 등 여성의 삶, 그녀 방식으로 재해석해

우리 외할머니 키는
늘었다줄었다 마음대로시다.
주홍색 내 세타 짜실 적엔
바늘보다 더 작게 납작해지시고
꿀 달라고 조르면
저 높은 시렁까지 쑥 늘어나신다.
내 발톱이 길어졌다고
나보다 반의반으로 작아지셔서
발톱도 깎아주시고
저 하늘 까마득히 매달린
사과도 성큼 따 주신다.
우리 외할머니
수 퍼 우 먼


작품1
을 보세요. 사과를 향해 뻗은 할머니의 팔이 아주 길게 늘어나 있지요? 위의 동시와 그림은 작가 윤석남(1939~)이 쓰고 그린 것이랍니다. 윤석남은 우리나라 여성주의 미술의 선구자라 불리는 여성 화가예요. 맨 마지막 줄, '수퍼우먼' 이라는 단어를 보니, 몇 년 전에 봤던 영화 '인크레더블'이 생각나네요. 인크레더블 가족은 모두 초능력자예요. 아빠는 엄청난 힘을 가진 수퍼맨이고, 엄마는 몸뚱이와 팔다리가 자유롭게 죽죽 늘어나는 수퍼우먼이죠. 우리가 아빠에게 바라는 것은 가족을 지켜주는 힘이지만, 엄마에게 바라는 것은 종류가 너무나도 다양해요. 그래서 엄마는 우리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변할 수 있어야 하나 봅니다. 윤석남이 그린 외할머니도 마음대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군요.

작품1~4
수퍼우먼의 심장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심장 역시 수축과 이완을 하며 작아졌다 커졌다 하지요. 그러는 동안 혈액을 모든 혈관과 세포로 전달하여 생명을 지속시켜 주죠. 작품2를 보세요. 이것은 수퍼우먼의 심장이에요. 분홍색인 것을 보니, 마음이 따스한 사람인 것 같아요. 정도 많아 다른 사람의 슬픔도 잘 아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네요. 심장 표면에 눈물이 송송 맺혀 있기 때문이죠. 윤석남은 조선시대 정조 임금 당시, 상인이었던 김만덕(1739~1812)을 떠올리며 이 심장을 만들었다고 해요.

김만덕은 그야말로 수퍼우먼이었어요. 그녀는 당시 남자들의 영역이었던 장사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죠.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다 굶어 죽게 되자 김만덕은 어렵게 모은 본인의 전 재산을 털어 쌀을 사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어요. 쌀을 실은 배가 가라앉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이런 선행(善行)을 멈추지 않았죠. 당시 정조 임금도 쉽사리 하지 못하고, 다른 부자들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장사하는 여자인 그녀 혼자서 해낸 것이지요. 펄떡거리는 따스한 심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작품3은 김만덕을 그린 것입니다. 사람을 살린 밥이 그녀의 주위를 빙 둘러 장식하고 있군요. 밥을 소중히 안은 그녀의 모습은 음식으로 사람을 보살피는 만인의 어머니처럼 보이네요. 예술가 윤석남이 생각하는 어머니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예요.

작품4를 보세요. 나무로 만든 개들이네요. 이 개들은 한때 주인이 있었으나 지금은 버려진 유기견이에요. 유기견들의 시선은 우리를 향하고 있죠. 우두커니 인간을 바라보는 개들의 말 없는 눈초리에서 사람들이 저지른 무책임한 짓을 깨닫게 됩니다. 버려진 개를 하나하나 거두는 마음으로 나무 개들을 만들면서 윤석남은 모성의 힘을 자신의 예술 속에서 발견하게 되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예술은 우리의 삶 속에 가깝게 숨 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는 일이 참 쉽지 않고 힘들 때 내가 힘든 것을 말하고, 예기치 않게 위로도 받고, 그래서 가끔 살아갈 힘도 얻는 그런 예술을 저는 꿈꿉니다."

결국 윤석남은 예술이 삶 속에서 실천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셈이지요.


문의: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02)2124-8937

이주은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