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포악한 정치로 왕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

입력 : 2015.05.18 03:06 | 수정 : 2015.05.19 10:08

평소 자신에게 직언하던 사림파 수십 명 쫓아낸 무오사화 벌이고
어머니 폐비 윤씨 원한 갚겠다며 신하 200명 처벌 갑자사화 일으켜
간신들만 아첨하며 주변 채웠죠

이번 주에 조선의 10대 왕이었던 연산군 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개봉된다고 해요. 영화는 왕에게 아첨해 권력을 얻고 그 권력을 왕처럼 휘두르는 신하들과 그런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흥청망청했던 연산군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죠. 연산군은 포악한 정치를 일삼다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는데, 그가 벌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예요.

◇"전하,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나랏일도 마음대로, 행동도 마음대로 하려 했어요. 그런데 왕이었기 때문에 나랏일도 개인적인 행동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죠. "전하, 이런 법은 없사옵니다" "전하,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하면서 말리는 신하들 때문이었죠. 이들은 성종 때 삼사 즉,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에서 학술과 언론을 담당하던 신하로 주로 사림파 출신이었죠.

[뉴스 속의 한국사] 포악한 정치로 왕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
/그림=이창우
사림파는 사림이 모여 정치적으로 세력을 이룬 집단을 말해요. 사림은 유학의 한 계통인 성리학을 열심히 따르는 선비들의 모임이지요. 이들은 주로 고려 말의 유학자인 이색·정몽주·길재 등의 학통을 이어받아, 지방에서 유향소를 기반으로 소학을 보급하고 향약을 시행하면서 나름대로 힘을 키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성종이 훈구파의 힘이 너무 세져서 왕의 힘이 약해질까 염려해 사림파를 관직에 불러들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삼사에 사림파 출신이 많이 자리를 잡게 된 거예요. 그렇다면 훈구파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훈구파와 사림파

훈구파는 공을 세워 권력을 얻은 신하들, 즉 공신들을 일컫는 말이에요. 태조가 조선을 세우는 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과 세조가 계유정난으로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운 사람들을 말하지요. 역사적으로는 주로 세조 때 공을 세운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지요. 공을 세웠으니 영의정·좌의정·우의정 같은 높은 벼슬에 올랐고, 나라로부터 넓은 땅을 받아 큰 부자가 됐죠.

사림파는 임금뿐 아니라 당시 높은 벼슬을 차지하고 있던 훈구파 인물들의 잘못도 서슴없이 폭로하거나 비판했어요. 그래서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 경우도 있었고요. 연산군은 자신의 뜻을 걸핏하면 반대하는 사림파에게 '신하들이 임금인 나를 업신여기는구나' 하며 많이 화를 내곤 했죠. 훈구파 대신들도 삼사나 사림파 인물들을 혼내주려고 벼르고 있었고요.

그러던 중에 '성종실록'이 편찬되는 과정에서 사림파 인물들이 화를 입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유자광을 비롯한 몇 훈구 대신이 당시 사실을 기록했던 사관 김일손의 글에서 세조를 비판한 내용이 있다며 연산군에게 고자질했던 거죠. 이때가 1498년 무오년이었어요.

◇사림파 선비들이 화를 당하다

[뉴스 속의 한국사] 포악한 정치로 왕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
/그림=이창우
실록에 들어갈 김일손의 글에서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김일손의 스승이자 당시 사림파의 중심으로 존중을 받았던 김종직이 지었던 '조의제문'이었어요. 옛날 중국 초나라의 황제였던 의제가 신하였던 항우에게 살해를 당한 것을 슬퍼하는 글인데, 사실은 세조가 어린 조카 임금을 몰아내고 왕이 됐다는 사실을 은근히 빗대며 세조를 폭군을 고발한 것이었죠.

세조의 증손자인 연산군은 이를 듣고 불같이 화를 내며 김일손 등 사림파 인물 5명을 처형하고, 수십 명을 유배를 보내거나 관직에서 쫓아냈죠. 이미 죽은 김종직의 관을 파헤쳐 시체의 목을 베도록 했어요. 이를 무오년인 1498년에 일어난 사림파 선비들이 화를 입은 사건이라고 하여 '무오사화'라고 해요.

무오사화로 삼사와 사림파의 힘이 약해졌고, 왕과 훈구파 대신들의 힘이 세졌어요. 그런데 연산군은 세진 힘에 취해 나라와 백성을 돌보지 않고 호화로운 잔치를 벌이고 대규모 사냥 대회만 열었어요. 연산군의 사치와 낭비로 나라의 재산이 바닥날 지경이 되자 이번에는 삼사와 사림파는 물론 훈구파 대신들까지 나서서 임금의 잘못을 아뢰었어요. 그때 임사홍이란 인물이 등장해요.

◇사림파와 훈구파 모두 큰 화를 당하다

연산군 10년인 1504년, 임사홍은 연산군에게 잘 보여 권력을 얻으려고 폐비 윤씨 사건을 연산군에게 말했어요.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씨는 후궁이었다가 왕비가 된 지 약 3년 만에 폐비가 돼 궁궐에서 쫓겨났죠. 인수대비와 후궁들의 꾐에 휘말려 사약을 마시고 죽게 됐는데 그 과정을 일러 준 것이에요.

'이 사건을 파헤쳐 어머니의 원한도 갚고, 말 안 듣는 신하들을 꼼짝 못 하게 해야겠구나. 공신들의 재산을 빼앗아 나라의 빈 창고도 채워야지.' 그러면서 연산군은 폐비 윤씨 사건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자들을 모조리 찾아내 처벌했어요. 이때 처벌을 당한 신하가 200명이 넘었다고 해요. 성종의 후궁인 귀인 엄씨 등이 죽임을 당했으며, 할머니인 인수대비도 화를 입어 죽고 말았죠. 이를 갑자년인 1504년에 선비들이 화를 입은 사건이라고 하여 갑자사화라고 불러요. 사림파 선비들이 화를 당한 것을 사화라고 부르지만 이때는 사림파 선비들뿐 아니라 훈구파 대신들도 엄청난 피해를 보았어요. 임사홍 같은 간신들만 연산군에게 아첨하며 세력을 키웠지요.


[함께 생각해봐요]

갑자사화 뒤, 연산군은 전국의 예쁜 여자를 뽑아 궁궐에 살게 했어요. 그중에 예쁘고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는 여자들을 뽑아 '흥청'이라고 부르며, 매일 잔치를 벌여 그녀들과 어울려 놀았어요. 그러다가 결국 2년 만에 훈구파 세력에 의해 강제로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죠. 백성은 연산군이 흥청과 놀다가 망했다고 해서 이를 흥청망청이라고 불렀어요. 조선시대에는 연산군 말고도 신하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 임금이 또 있어요. 바로 조선 15대 왕인 광해군이죠. 광해군은 어떤 일을 했기에 왕위에서 쫓겨난 것인지 알아봅시다.

♣ 바로잡습니다
▲18일자 '뉴스 속의 한국사'에서 옛날 중국 초나라의 황제였던 의제를 죽인 사람은 신하 '황우'가 아닌 '항우'로 바로잡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이종범 교수(조선대 역사문화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