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책으로 보는 세상] "돈 줄 테니… 우리 아들 위해 제비뽑기 해줄래?"
[66] 조정래 '인형극'
경쟁률 높은 사립 초등학교 입학
영찬은 부잣집 낙준엄마 권유로 대리 추첨 성공해 돈 받았어요
돈·권력 앞에서 약자인 주인공…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 인형 닮아
- ▲ 그림=이병익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가 청소년 2만여 명을 대상으로 '2013 청소년 정직 지수'를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었어요. 절반에 가까운 고교생이 "10억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대답했기 때문이에요.
돈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회에서 도덕이나 윤리, 인간의 존엄성은 뒤로 밀려나고 만 것이죠. 그러나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러한 생각은 돈이 있는 자를 강자로 만들고, 돈이 없는 자를 약자로 만들어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비극을 그린 조정래(1943~) 소설가의 단편소설 '인형극'에서도 아들을 사립학교에 입학시키려는 '강자' 낙준 엄마가 등장해요.
이야기는 어린 영찬이가 삼천 원을 벌어 즐거워하는 것으로 시작해요. 이 돈은 당시 값어치로 엿장수인 영찬이 아빠의 엿새 벌이쯤 된다고 하니 어린아이가 무슨 일을 해서 이렇게 큰돈을 벌었을까요? 더구나 친구 창호는 영찬이와 똑같은 일을 하고도 오백 원밖에 벌지 못했으니 그 사연이 더 궁금해져요.
"자아,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해.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꼭 외워 두어야 한다. 알겠니?"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너의 특기는 뭐지? 예, 저의 특기는 피아노입니다." "예, 저의 특, 특…." "다시 해 봐. 너의 특기는 뭐지? 예, 저의 특기는 피아노입니다." "어디까지 공부했지? 예, 체르니를 다 마쳤습니다." "예, 체, 체…." 나는 죽을힘을 다해서 아주머니의 말을 외우려고 했지만, 이 대목에서 또 막히고 말았어요. "저런 쪼오다. 체르니도 몰라, 체르니?" 낙준이는 또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 질렀습니다. 나도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화를 낼 수는 없었어요. 왜 그런지는 잘 모릅니다.
그날 아침, 영찬이는 어떤 아주머니를 따라 영찬이네 안방보다도 넓은 승용차를 타고 낙준이네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으리으리하고 번쩍번쩍하는 큰 집에서 시키는 대로 면접 준비를 해요. 부잣집 아이들만 다닌다는 '샛별 사립 초등학교'는 입학 지원자가 많아 들어가기 어려워요. 그래서 제비를 뽑아 입학을 결정했죠. 이쯤 되면 눈치챘나요? 영찬이는 검사 아들인 낙준이의 입학 확률을 높이려고 거짓으로 면접을 준비하고 제비뽑기에 참가하게 된 것이에요. 그리고 낙준이는 제비뽑기에 실패했지만, 영찬이는 성공했기 때문에 삼천 원을 벌게 됐어요.
실제로 예전에는 사립 초등학교에 들어가려고 학부모들이 자녀가 입학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대리 학생에게 제비뽑기하도록 했다고 해요. 여러분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한 것이기 때문에 낙준 엄마와 같은 사람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그런데 이런 생각은 죄를 짓고 감옥에서 1년 정도 살았기 때문에 10억원을 받아도 된다는 생각과 다를 바 없어요. 이제 이 소설 제목이 왜 '인형극'인지 짐작할 수 있겠죠? 인형극을 떠올려 보세요. 영찬이가 마치 줄에 매달린 인형처럼 돈 있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과 닮지 않았나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돈과 권력이 있는 낙준 엄마 같은 사람들을 감정이나 생각 없이 자기들 이익에만 몰두한 인형으로 비유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어요. 영찬이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인간적 행동을 하는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 인형일 뿐이니까요.
"엄마, 난 삼천 원이고, 창호는 오백 원이야. 창호는 그 집 애도 뽑혀 버렸거든. 이거야 이거, 돈. 삼천 원이야, 빳빳한 새 돈 삼천 원." 엄마는 돈을 받지 않고 나를 덥석 안았어요. 그리고 팔에 힘을 주어 꼭꼭 끌어안았어요. 그러면서 우는 거예요. 소리는 안 나지만 엄마 몸이 떨리는 것으로 알 수 있었어요. 나도 울음이 나오려고 했어요. 그러나 꾹 참았어요. 그러면서 커서 꼭 검사가 되겠다고 나는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요.
이야기는 엄청난 부자인 낙준 아빠의 직업이 검사라는 것을 안 영찬이가 커서 검사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으로 끝이 나요. 부자가 되고 싶은 영찬이의 소망이 더없이 씁쓸하게 다가오네요.
#이야기
희생양을 뜻하는 영 단어 '스케이프 고트(scapegoat)'는 구약성경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해요. '달아나다, 벗어나다'를 뜻하는 '이스케이프(escape)'의 중세 영어 '스케이프'와 산양(山羊)이나 염소를 의미하는 '고트(goat)'의 합성어죠. 희생양, 속죄양 등으로 부르는 이 '양'은 일반적인 희생 제물과는 다른 의미의 제물이었는데, 사람 대신 그 죄를 옮겨 바치는 양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현대에는 관용적 표현으로 굳어 일반적으로 흔히 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어떤 목적을 위해 피해를 본 사람을 의미하지요. 돈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이 종종 일어나요. 영찬이가 받을 마음의 상처는 안중에도 없는 낙준 엄마가 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이기심은 다른 사람의 희생과 연결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요.
[함께 생각해봐요]
우리가 인형극의 인형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인정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지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