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탈북 교사의 북한 학교 이야기] 북한의 '어린이날', 어린이들은 집단 체조 연습으로 힘들대요

입력 : 2015.05.05 03:05

5월은 '가정의 달'이에요. 사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가정의 달'이란 말이 참으로 어색했어요. 아마도 개인보다 집단을, 가정보다 사회를 더 중시하는 폐쇄된 곳에서 살아서였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인지 가정의 달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딘가 모르게 짠하고 애틋함이 느껴져요. 오늘은 가정의 달에 있는 기념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북한에는 가정의 달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요. 5월에 기념일이라곤 '5·1 노동절'밖에 없지요. 노동절도 경기 침체로 대대적인 행사를 하는 일이 없어요.

노동 계급의 세상이라고 북한 정부는 선전하지만, 막상 이날에 노동자들은 집에서 쉬는 것밖에 안 하죠. 국가에서 이날을 기념해 공급하는 물자도 전혀 없어요. 반면 TV에 나오는 노동절은 떠들썩하지요. 중앙 간부들이 기업에 찾아가 노동자들과 운동을 하고 장기 자랑도 하죠. 저녁엔 평양에서 무도회가 열리기도 해요.

북한에는 우리와 같은 어린이날이 따로 없고, 비슷한 성격으로 사회주의권 나라들이 정한 기념일인 국제아동절이 있죠. 북한 각지의 탁아소와 유치원에서는 국제아동절 맞이 행사가 열려요. 대개 어린이들이 집단 체조를 하는 형태죠.
북한에는 우리와 같은 어린이날이 따로 없고, 비슷한 성격으로 사회주의권 나라들이 정한 기념일인 국제아동절이 있죠. 북한 각지의 탁아소와 유치원에서는 국제아동절 맞이 행사가 열려요. 대개 어린이들이 집단 체조를 하는 형태죠. /Getty Image/멀티비츠

그렇다면 북한에 어린이날은 있을까요? 있긴 하지만, 한국과는 조금 달라요. 우리의 어린이날은 5월 5일이지만, 북한에서는 6월 1일이에요. 북한식 명칭은 국제아동절이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제아동절은 북한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권에서 공통으로 기념하는 날이에요. 한국에서 어린이날은 대개 초등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만, 북한의 국제아동절은 만 9세 미만 아동만 해당돼요. 만 9세부터 소년단이라는 생애 첫 정치 조직에 가입하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소년단절, 청년절을 따로 기념해요.

우리의 어린이날은 국가 공휴일이지만, 북한의 국제아동절은 공휴일이 아니에요.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랍고 부러웠던 것이 어린이날을 비롯해 주말에 부모님이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는 모습이었어요. 이때마다 남북의 차이를 많이 느꼈죠.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한국 어린이들과 달리 북한 어린이들은 이날을 싫어하는 편이에요.

국제아동절은 국가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는 일터에 나가죠. 그러면 북한 어린이들은 집에 혼자 남거나 탁아소·유치원에 맡겨지죠. 부모님 직장에 같이 따라간다든가, 가까운 친척 집에 가요. 국제아동절을 위한 행사를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요. 예전에는 간단히 운동회를 했는데, 90년대 후반부터 유치원생부터 집단 체조를 준비해요. 말이 집단 체조지 아이들에게는 중노동이나 다름없지요. 한 달 내내 연습하는데, 아이들이 뙤약볕에서 운동하느라 저녁엔 잠자리에 오줌을 싼다는 말이 나돌 정도예요.

우리 스승의 날은 5월 15일이지만 북한에서는 9월 5일이에요. 이를 교육절이라고 하지요. 김일성이 교육 강령을 발표한 날이라고 기념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수령 중심의 집단주의 사회에서 선생님의 수고나, 사제 간의 애틋한 정을 나누는 행사는 없어요. 한국에선 이날이면 학생들이 선생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감사 편지를 드리지만, 북한에서는 그러지 못해요.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란 것도 북한에는 없어요. 왜냐하면 수령이 어버이처럼 섬겨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가정의 부모를 따로 위하는 행사는 있을 수 없죠. 부부간의 정도 당과 혁명을 위해서는 희생해야 하며, 성년이 되는 축복도 수령의 전사에겐 아무 의미가 없답니다. 우리의 '가정의 달' 모습과 참 많이 다르지요?

정명호·전(前)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