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책으로 보는 세상] 노인으로 태어났지만… 시간 지날수록 난 젊어졌다

입력 : 2015.04.22 03:08

[63] F 스콧 피츠제럴드 '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

70세 모습으로 탄생한 벤자민
어릴 땐 아이처럼 행동하지 않아서, 늙어서는 어린 외모로 타인과 갈등

누구나 남과 다른 차이는 있어… 다른 사람 이해하는 자세 필요

여러분은 하루빨리 어른이 돼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아마 10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봤을 거예요. 그런데 막상 어른들은 '10대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지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어떤 이는 다가올 미래로, 또 다른 이는 지나간 과거로 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 흥미롭지 않나요? 이렇듯 시간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똑같이 흐르지만, 개인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 것 같아요.

'시간'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유명한 '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은 '위대한 개츠비'를 쓴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이에요. 우리에게는 이것을 원작으로 각색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유명한 작품이죠. 이 소설은 1860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중산층의 가장인 로저 버튼이 방금 태어난 아들을 만나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시작해요. 하지만 놀랍게도 신생아가 누워 있어야 할 요람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일흔 정도 돼 보이는 노인이었어요. '갓 태어난 노인'이라는 있을 수 없는 일의 주인공이 바로 벤자민 버튼이었어요. 자신을 보고 혼란에 빠진 로저 버튼에게 벤자민 버튼은 "응애" 대신 "댁이 내 아버지인가?"라고 첫 마디를 건네죠.

[책으로 보는 세상] 노인으로 태어났지만… 시간 지날수록 난 젊어졌다
/그림=이병익
남들의 인생 시계와 정반대 방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벤자민 버튼의 삶은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삐걱거려요. 그의 인생은 갈등의 연속이었죠. 먼저, 자라면서는 그 나이대의 평범한 아이들처럼 행동하길 바라는 아버지와 갈등을 겪어요. 그 후에는 오십대의 외모로 자신의 실제 나이(열여덟 살)를 주장하다가 미치광이 취급을 받기도 해요.

스무 살이 돼(오십대로 살아가지만) 운명처럼 만난 힐데가르드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지만 이내 또 갈등을 겪죠. 점점 늙어가는 힐데가르드와 달리 벤자민은 점점 젊어졌기 때문이에요. 더는 아내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자 그는 아예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죠. 미국과 스페인 전쟁에 군인으로 참가하는가 하면, 전장에서 돌아와서는 한층 젊어진 삼십대의 육체와 정신으로 각종 사교클럽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요. 다음은 소설의 일부분이에요.

그는 이제 삼십대의 남자로 보였다. 기쁜 마음이 드는 대신 불안했다. 그는 점점 더 젊어지고 있었다. 이제까지는 자기 나이에 해당하는 신체 연령에 도달하면 출생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그 기괴한 현상이 더는 작동하지 않기를 바랐다. 오싹했다. 자기 운명이 끔찍하고 믿을 수 없었다.


미국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
미국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 이외에도 '위대한 개츠비' 등 다수의 소설을 남겼어요. /위키피디아
이렇듯 벤자민은 상대적으로 다르게 돌아가는 자신의 시간과 운명을 잠시 불안해하기도 하지만, 이내 주어진 젊음에 빠져 살아가요. 하지만 젊음의 시기를 지나고 유년기로 들어가면서부터는 그의 아들인 로스코와 갈등을 겪어요. 로스코는 벤자민을 아버지로 인정하기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를 골칫거리로 여기죠.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게 되지만, 그 안에서 각자가 살아가는 시간의 의미는 저마다 달라요. 벤자민은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문제는 끝끝내 해결하지 못하죠. 여기에는 주변 인물들의 외면도 크게 작용했죠. '차이'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없는 그들에게서 벤자민의 삶이 존중받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어요.

#이야기

지난 1월,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본사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어요.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의 테러리스트들이 급습해 총기 난사 테러를 벌였거든요. 이들은 프랑스에서 자란 알제리 출신 이민자 2세 청년이었어요.

표면적으로 드러난 종교적 갈등부터 빈곤층에 속한 무슬림 계층이 겪는 사회 계급적 갈등까지, 이번 테러의 배경을 놓고 다양한 원인 분석이 나오고 있죠. 그런데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 만화가 도를 넘은 표현의 자유인지는 둘째치고라도, 자신의 주장을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한 이들의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어요. 이들에게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 차이를 가진 타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 공존하려는 노력이 없었죠.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존중과 공존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제대로 빛날 수 있어요. 내 존재가 소중하듯 타인도 나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 사람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벤자민 버튼의 기괴한 출생을 놓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자신의 입장과 사회적 인식이었어요. 출산을 집도한 의사는 특수한 아이를 받아낸 일이 자신의 직업적 명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부터 내뱉었고, 벤자민의 아버지는 볼티모어에서 자신의 체면이 구겨질까 봐 전전긍긍했죠. 이렇듯 극심한 개인주의가 판치는 차가운 사회에서 차이를 가지고 태어난 벤자민은 소외당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누구라도 진정으로 그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차이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보였다면 거꾸로 흐르는 벤자민의 시간은 다른 방식으로 펼쳐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혹시 여러분 주위에는 벤자민처럼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이들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일지 고민해보세요. 또한 만약 여러분이 벤자민의 아버지였다면, 혹은 배우자나 자식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봅시다.

박혜강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