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상을 바꾼 리더] "흑인도 버스에서 앉을 권리 달라" 인종차별 무너뜨린 인권운동가

입력 : 2015.04.16 03:07

[61] 마틴 루서 킹 2세

마틴 루서 킹(1929~1968)은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1900년대, 평화적인 운동으로 평등·평화·화합의 신념을 실천한 인권 운동가예요. 그는 미국 남부 애틀랜타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의식주에 대한 큰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남부에서 살았기에 어린 시절부터 백인들에게 숱한 차별과 멸시를 받았어요.

마틴이 신학교 재학시절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흑인 인권 문제였어요. 그는 차별 때문에 힘들어하는 흑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죠. 그러던 어느 날, 하워드 대학 존슨 총장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이 강연에서 간디의 비폭력 저항주의 사상을 접한 마틴은 크게 감동하였죠. 마틴은 간디의 투쟁 방식을 흑인 운동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어요. 흑백 차별은 백인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확신했죠.

미국 내 버스의 차별적 좌석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마틴 루서 킹은 버스 보이콧 운동을 벌여요.
미국 내 버스의 차별적 좌석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마틴 루서 킹은 버스 보이콧 운동을 벌여요. /Corbis/토픽이미지

신학교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까지 받고 마틴은 남부의 몽고메리에 있는 어느 교회에 정식 목사로 임명돼요. 얼마 후, 킹 목사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키는 일이 일어나요.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여인이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 양보하기를 거부한 사건이에요. 흑인이나 백인이나 모두 같은 돈을 내고 버스를 타는데 이는 너무 불공평한 일이라 생각한 파크스 부인은 자리를 양보하라는 백인의 말을 거절하죠. 그리고 파크스 부인은 흑백 분리법을 위반한 죄로 경찰에 체포됐어요.

킹 목사는 이에 항의하기 위해 버스를 타지 않겠다는 버스 보이콧 운동을 시작해요. 그리고 이 운동은 불만이 높아진 흑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대성공을 거두죠. 다급해진 백인들은 흑인으로 구성된 조직을 분열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어요. 그리고 단체의 의장인 킹 목사에게 터무니없는 죄를 씌워 교도소에 가두죠. 하지만 교도소 앞으로 킹 목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엄청난 사람들에 당황한 교도관은 킹 목사를 석방해요.

그 이후에도 버스 보이콧 운동은 계속됐어요. 결국 미국 연방 최고 법원는 버스 내 흑백 분리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죠. 그리고 킹 목사의 뜻대로 백인들을 향한 흑인들의 비폭력 투쟁이 전역으로 퍼져 나갔답니다.

인종차별에 맞서 사랑을 실천한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이 군중 속에서 연설하는 모습이에요. 그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비폭력 운동을 이끌었죠.
인종차별에 맞서 사랑을 실천한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이 군중 속에서 연설하는 모습이에요. 그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비폭력 운동을 이끌었죠. /Corbis/토픽이미지

킹 목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종차별의 벽은 서서히 무너져 갔어요. 흑인과 백인을 모두 받는 식당이 곳곳에 생겨났으며, 극장과 공원 같은 공공장소도 흑인에게 문을 열기 시작했죠.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 대통령도 킹 목사의 비폭력 투쟁에 자극을 받아, 흑인도 국민의 기본 권리를 가질 수 있는 내용이 담긴'민권법' 법안을 제안했어요. 그리고 1964년, 킹 목사는 인권 운동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흑인에 대해 관대해져 갈수록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킹 목사에 대한 살해 위협도 심해졌어요.

결국 킹 목사는 39세의 젊은 나이에 암살당하고 말죠. 그는 비록 죽었지만, 그가 목숨을 다해 강조한 비폭력에 대한 의지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1분 상식] 마틴 루서 킹 데이(Day)는 언제일까?

미국은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마틴 루서 킹 데이’로 정해 그의 생일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어요. 마틴 루서 킹 데이는 인류의 화합과 평등을 위해 노력한 킹 목사의 공로를 기리고자 만들었죠. 실제 킹 목사가 태어난 날은 1월 15일이지만, 미국 의회 투표를 거쳐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공휴일로 정했어요.

박영진·후(who) 시리즈 위인전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