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로마는 왜 크리스트교를 박해했을까

입력 : 2015.04.10 03:07

[크리스트교와 로마 제국]

우상 숭배·군대 거부한 크리스트교… 로마인에게 미움을 사게 돼
예수는 대중 선동했단 이유로 처형… 네로 황제 땐 집단 학살까지 발생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종교로 허용… 이후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퍼졌어요

크리스트교는 세계 3대 종교라고 할 만큼 신도가 많아요. 크리스트교에서 분리된 가톨릭, 개신교, 그리스 정교 등의 신도를 모두 포함하면 대략 20억 명 이상이 되죠. 지난 4월 5일은 크리스트교의 큰 축제 중 하나인 부활절이었어요. 부활절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로마 교황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를 가졌죠. 그런데 예수는 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만 했을까요? 왜 예수와 같은 민족인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아야만 했을까요?

고대 로마 제국에는 다양한 신이 존재했어요. 신들의 왕 유피테르, 지혜의 신 미네르바, 전쟁의 신 마르스, 사랑의 여신 비너스 외에 죽은 황제까지도 신으로 받아들여졌죠. 넓은 영토만큼이나 많은 신이 존재한 셈이죠. 신에게 제사 지내는 날을 정확히 표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달력이에요. 예를 들어 1월(January)은 야누스 신에게 바친 달이었고, 3월(March)은 전쟁의 신 마르스를 위한 달이었죠.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신 이외에도 각 가정에는 수호신이 있었어요. 제사를 소홀히 지내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생각해서 온갖 정성을 다했답니다. 그러니 오랜 옛날, 유대인이 섬기는 신 하나쯤 더 받아들이는 건 대수롭지 않았을 거예요.

로마 제국 제5대 황제였던 네로 황제는 로마에 큰불이 나 민심이 혼란스러워지자, 소수 종교인 크리스트교에 책임을 뒤집어씌워 대학살을 벌였어요. 이때 많은 크리스트교인이 사나운 개나 사자의 먹잇감이 됐어요.
로마 제국 제5대 황제였던 네로 황제는 로마에 큰불이 나 민심이 혼란스러워지자, 소수 종교인 크리스트교에 책임을 뒤집어씌워 대학살을 벌였어요. 이때 많은 크리스트교인이 사나운 개나 사자의 먹잇감이 됐어요. /위키피디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통치하던 시절,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은 로마의 식민지였어요.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은 이 지역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을 인정하고 자치를 허용했죠. 유대교는 유일신인 여호와에게 유대 민족만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종교예요. 그들은 언젠가 구세주 메시아가 나타나리라 믿고 있었죠. 그때 예수가 믿음과 사랑, 소망을 강조하며 기적을 통해 사람들을 감동시켰어요. 차별 없는 사랑,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며 세례를 줬죠. 예수 곁에는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 힘없고 약한 사람이 넘쳐났죠. 유대교 지도자들은 기존 형식을 벗어난 행보를 보이는 예수 때문에 자신들의 정치적인 기득권을 빼앗길까 두려웠어요.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여기지 않았고, 재판을 통해 예수를 사형에 처하기로 했답니다. 그러고는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에게 사형을 요구했죠. 예수가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선동하는 정치범이라는 이유에서였어요.

예수의 죄를 찾지 못한 빌라도는 난처했지만, 결국 예수에게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가는 형벌을 내렸어요. 고난의 상징인 십자가는 오늘날 적십자의 붉은 십자가가 돼 사랑과 희생의 상징이 됐죠. 예수를 죽음으로 이끈 유대인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오랫동안 크리스트교 중심의 유럽 세계에서 예수를 죽인 장본인이 돼 고난의 역사를 갖게 됐죠.

예수가 죽은 후 3일 만에 부활했음을 믿는 제자들이 크리스트교를 놀라운 속도로 퍼뜨리기 시작했어요. 유대인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여겼던 유대교에 비해 크리스트교는 모든 민족에게 평등하게 퍼져 나갔죠.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제자와 바울의 전도 여행은 교회의 씨앗이 됐어요.

64년 여름, 폭염을 피해 휴가를 떠났던 네로 황제에게 기분 나쁜 소식이 들려왔죠.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서 로마가 불타고 있습니다." 이 때의 화재로 로마시 대부분은 잿더미가 됐어요. 네로 황제는 이재민에게 자기 정원을 내주고, 음식을 주며 상황을 수습했지만 허사였죠. 결국 네로 황제는 크리스트교도를 방화범으로 지목해서 책임을 덮어씌웠어요. 그들이 유일신을 섬긴다며 로마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노여움을 탔다고 생각했지요.

(왼쪽)과거 로마인들은 정치적 선동가, 해적, 노예 등 사형에 처할 중죄인을 다스릴 때 십자가를 많이 사용했어요. 크리스트교인들이 예수를 따르자, 그들의 결속력에 위협을 느낀 로마의 지배층에 의해 예수 역시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처형됐죠. (오른쪽)네로 황제의 모습.
(왼쪽)과거 로마인들은 정치적 선동가, 해적, 노예 등 사형에 처할 중죄인을 다스릴 때 십자가를 많이 사용했어요. 크리스트교인들이 예수를 따르자, 그들의 결속력에 위협을 느낀 로마의 지배층에 의해 예수 역시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처형됐죠. (오른쪽)네로 황제의 모습. /위키피디아·Corbis 토픽이미지
기름을 바른 나무 기둥에 묶어 놓고 불태워 죽이거나, 짐승 가죽을 뒤집어씌우고 굶주린 개의 먹이가 되도록 하는 등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하기 시작했어요. 베드로와 바울도 그때 순교했지요. 전염병이 돌거나 불이 날 때마다 크리스트교도들의 수난은 계속됐어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때에 와서는 그에 맞서 우상 숭배를 거부한 크리스트교도가 떼죽음했어요.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로마 군대 입대를 거부한 것이 큰 분노를 샀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관광지가 된 이탈리아의 지하 공동묘지 카타콤, 터키의 데린쿠유 유적은 땅속에 숨어 지내야만 했던 초기 크리스트교 신앙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후 순교자의 피는 더 큰 열매를 맺어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는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을 받고,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는 로마의 국교가 됐답니다. 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으로 더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세상이 온 것이죠. 이후 크리스트교는 유럽 전체 지역으로 퍼졌어요. 서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이슬람교와 대립하며 유럽 세계를 지켜왔지요. 그리고 신항로 개척 이후에는 아시아와 신대륙으로 퍼져 오늘날 세계적 종교가 됐답니다.

공미라 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