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미술관에 갔어요] 색채, 내 마음 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들다
[마크 로스코 展]
인물화 그리던 마크 로스코, 사람보다 색이 중요하단 것 깨달아
큰 화면에 색만 채워넣은 그림 통해 보는 이가 자유롭게 해석하도록 해
4월입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시인 T S 엘리엇은 말했죠. 오래도록 죽어 있던 땅, 완전히 얼어 마비된 나무에서 어렵사리 라일락꽃을 싹 틔워야 하니까요. 죽어 있던 땅에게 생명을 품어 꽃을 피우라니, 이 얼마나 잔인한 요구인가요. 차라리 겨울이 포근하지 않으냐고 시인은 묻습니다. 겨울엔 뭐든 하얗게 덮어 잘 잊게 해주는, 이불처럼 두툼한 눈이라도 있으니까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에는 잔인한 처벌을 받은 어느 이집트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왕은 전쟁 중 페르시아에 포로로 붙잡혔죠. 적국의 왕은 잔인하게도 그의 가장 소중한 딸을 노예로 만들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했죠.
이집트 왕은 거리에서 노예 중에 자신의 딸이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야 말았죠. 딸은 맨발에 누더기를 걸친 채 물동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어요. 모든 이집트인이 이 장면을 보고 땅에 엎드려 엉엉 소리 내 울부짖었지만, 정작 울어야 할 왕은 돌이 된 듯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봤어요. 이때에도 통곡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직 왕만은 멍하니 그대로 있었어요. 한참 후에 왕은 포로들 속에서 늙은 하인 한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그를 보자마자 왕은 울컥하더니 주먹으로 머리를 치고 하염없이 흐느꼈어요. 왜 그랬을까요?
"참담한 감정은 마음속에 있어도 그냥은 끄집어 낼 수가 없지요. 슬픔이란 구체적인 모양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 화가가 있었어요. 바로 추상 표현의 거장이라 불리는 마크 로스코(1903~1970)입니다. 현재 예술의전당에서는 그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어요.
아들과 딸을 잃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어찌할 줄 모르는 이집트 왕에게 슬픔이라는 감정을 표현할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늙은 하인의 존재였을 거예요. 어쩌면 평소에 그 늙은 하인이 왕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는지도 모르지요. 이 이야기처럼 로스코는 사람들이 감정을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예술의 역할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 ▲ 작품1 - 마크 로스코, 〈안티고네 Antigone〉, 1939-41, 캔버스에 목탄과 오일, 86.4 x 116.2㎝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처음에 그는 오래된 비극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작품 1은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시인 중 한명인 소포클레스의 대표작 '안티고네'와 같은 제목을 달고 있어요. '안티고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행복하지 못했어요. 처참하게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그 자신이 사망했죠. 이런 식으로 인물 그림을 그리다가 로스코는 문득 깨달았어요. 그림 속 주인공은 인물이 아니라 색이라는 사실을요. 즉, 색채는 어떤 모양을 위해 사용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생명력을 갖는다는 것을 발견했죠. 그래서 로스코는 자신이 칠하는 색채를 '배우'라고 불렀어요.
- ▲ 작품2 - 마크 로스코, 〈무제 Untitled〉, 1953, 캔버스에 유채, 195 x 172.1㎝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 ▲ 작품3 - 마크 로스코, 〈무제(하버드 벽화 스케치) Untitled〉, 1962, 캔버스에 오일, 아크릴, 혼합재료, 175.6 x 142.6㎝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로스코의 그림 앞에 선 비평가와 많은 관람객은 "이것은 단순히 색채가 아니라 뼛속까지 절게 하는 아주 절절한 색채였다"고 말했어요. 관객 중에는 그림이 마치 사람처럼 자기와 함께 호흡을 하는 것같이 느껴졌다고 털어놓는 사람도 있었죠.
색채는 배우이지만 무대 위에서 아무런 대사도 하지 않습니다. 정적 속에서 오직 색만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에요. 그 색이 마음에 닿아 그 사람을 물들이고, 그 사람의 감정을 자기의 색 안으로 스며들게 하지요. 배우의 침묵 덕분에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작품의 무대는 이제 우리의 무대가 되죠.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02)532-4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