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답 베끼기, 대리응시… 과거시험 때도 부정 있었대요
입력 : 2015.03.27 03:07
[과거제도의 역사]
중국서 관리 뽑는 수단이던 과거제… 한국·베트남 등 주변국까지 전파돼
점차 성공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자 옆사람과 얘기하고, 정답 바꾸는 등 부정행위하는 사람 늘어났어요
- ▲ 사진1 - 인도의 학부모가 자녀에게 커닝 쪽지를 전달하기 위해 고사장 벽을 올라가는 모습이에요. /AP 뉴시스
이 사람들이 스파이더맨이 된 이유는 바로 자녀의 고등학교 입학시험 때문이에요. 인도는 입학시험 문제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나라죠. 자녀가 좋은 고등학교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모가 모범 답안을 적은 쪽지를 전해주기 위한 행동이랍니다. 평가의 원래 목적은 뒷전에 두고, 오직 시험을 잘 보고 싶은 잘못된 마음만 앞서 버린 거예요. 그런데 이와 같은 부정행위는 옛날에도 있었대요.
서양에서 시험 성적이 우수한 사람을 인재로 선발하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민주주의가 처음으로 꽃핀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는 관리를 뽑을 때 추첨을 하거나 순서를 정해서 돌아가며 하기도 했죠.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평했지만, 인재가 아닌 사람이 관리가 돼 정치가 타락하는 단점이 있었어요. 중세 사회에서는 귀족이었던 부모의 신분을 이어받아 관리가 됐죠. 경우에 따라 추천을 받기도 했지만, 엉뚱한 사람이 뇌물을 주고 관직에 오르기도 해 비합리적이었어요.
시험으로 유능한 관리를 선발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과거제도예요. 587년 중국의 수나라에서 처음으로 시행돼서 이후 천 년 넘게 중국에서 이어졌죠. 당시 남북으로 분열됐던 중국을 재통일한 수나라의 문제에게는 시급한 과제가 있었어요. 이미 권력을 잡고 있는 귀족들이 그를 무시하고 따돌렸던 것이죠. 이에 문제는 황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관리를 뽑아서 황제의 권력을 강하게 만들려는 의도에서 과거제를 만들었죠. 다른 나라와 국제 교류를 많이 하던 당나라에서는 과거시험의 과목을 대폭 늘려 많은 분야의 관리를 뽑았어요. 게다가 외국인도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라의 최치원도 당나라의 관리가 될 수 있었죠.
- ▲ 몇 년 전 경복궁에서 진행된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 행사 때 모습이에요. 과거제도는 시험을 치러서 관리를 뽑는 것으로 중국과 우리나라 등에서 성행했죠. 과거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행위 등 다양한 폐해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이어졌어요. /이태경 기자
본격적으로 과거제를 시행한 나라는 송나라였어요. 송나라에서는 대개 각 지방에서 1차 시험을 치르고, 합격한 사람을 대상으로 수도에서 2차 시험을 보게 했죠. 여기까지 합격하면 황제 앞에서 3차 시험을 치러요. 3차에서도 합격하면 황제가 직접 관리로 뽑았죠. 황제에게 1등으로 인정받은 사람을 '장원'이라고 하는데, 황제의 은혜를 입었으니 충성하는 것은 당연했죠. 송나라에서는 거의 3년에 1번꼴로 과거를 시행하고 한 번에 약 300~400명이 합격했어요. 송나라의 인구가 1억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되니, 관리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거예요. 그만큼 과거 합격은 출세의 지름길이었죠.
과거시험장의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신분 상승을 위해 부정행위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책을 시험장에 몰래 숨겨서 들어가거나 작은 종이에 베껴오기도 했어요. 심지어 붓뚜껑이나 콧구멍 속, 혹은 도시락 속에 돌돌 말린 쪽지를 숨겨 넣었어요. 옆 사람 답안지를 몰래 베끼거나, 대놓고 다른 사람과 토론을 하며 답안을 작성하는 사람도 있었죠. 답안지를 땅에 떨어뜨리는 척하면서 보여주거나, 시험에 대리 응시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미리 돈을 주고 시험 문제를 알아내는 사람, 시험지에 채점자가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하는 사람, 화장실을 핑계로 들락날락하며 답안지를 바꿔치기하는 사람까지 나왔어요.
- ▲ 사진2 - 옷을 자세히 살펴보면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 있어요. 옛날 중국에서는 이 옷을 몰래 입고 시험장에 들어가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대요. /상해 자딩 박물관 제공
오랜 세월 동안 과거제도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신분 상승의 길을 터주고 중앙의 권력을 안정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죠. 이는 우리나라와 일본, 베트남 같은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우리나라에서는 958년 고려 광종 때 후주에서 온 쌍기의 권유로 과거를 처음 시행했죠. 이후 1894년 갑오개혁으로 사라질 때까지 선비들의 과업이 됐어요. 이것은 외무고시·행정고시·사법고시 등 고등고시의 기원이 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