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게 친구예요

입력 : 2015.03.25 03:06

[59] 장 자크 상페 '얼굴 빨개지는 아이'

얼굴 빨개지는 아이 '마르슬랭', 늘 재채기하는 아이 '르네 라토'
주변에서는 둘을 이상히 여겼지만 두 사람은 서로 이해하며 친해졌죠

겉모습보다 마음 알아주는 것… 인간관계서 중요한 부분이에요

우리에게 친근한 책 '어린 왕자'에서 사막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사람들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물건을 가게에서 살 뿐이야. 그렇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이제 그들은 친구가 없는 거지." 과연 그럴까요? 최근 뉴스에 따르면 결혼식 하객 대행은 물론, 여행 같이 가주는 친구, 점심 같이 먹어주는 친구 등 돈만 내면 친구를 구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이 생겨났다고 해요. 언뜻 보기에 친구마저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 같지요? 하지만 돈으로 산 친구와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요? 장 자크 상페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의 두 주인공을 살펴보며 함께 생각해봐요.

얼굴 빨개지는 아이인 '마르슬랭 카이유'는 정작 얼굴이 빨개져야 할 상황에서는 멀쩡하고 빨개져서는 안 될 상황에 빨개지니 늘 당황합니다. 마르슬랭을 본 사람들은 항상 그의 빨간 얼굴에 대해서 이야기했죠. 그럼에도 마르슬랭은 자신을 불행하다 여기지는 않았고, 단지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빨개지는지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책으로 보는 세상]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게 친구예요
/그림=이병익
그러던 어느 날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를 하는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의 이름은 '르네 라토'였고 마르슬랭의 새 이웃이었어요. 르네 역시 재채기 때문에 곤란한 날이 많았어요. 바이올린 연주 중에도 재채기가 나오니 괴로울 수밖에요. 주변 사람들도 수군댔죠. 하지만 르네 역시 마르슬랭과 마찬가지로 그렇게까지 불행하지 않았어요. 단지 코가 근질거렸고, 그것이 그를 자꾸 신경 쓰이게 할 뿐이었죠.

그들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 그날 밤 두 꼬마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서로 만나게 된 것을 아주 기뻐했다.

둘은 가까워졌고, 어느새 돈독한 친구 사이가 됐어요. 운동신경이 좋은 마르슬랭은 르네에게 운동을 가르쳐줬고, 바이올린 연주를 잘하는 르네는 마르슬랭에게 연주를 들려줬습니다. 르네는 언제나 마르슬랭을 찾았고, 마르슬랭은 언제나 르네를 궁금해했습니다. 빨개지는 얼굴이 보이지 않고 재채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더 불안하게 느껴졌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르네가 갑작스레 이사를 하면서 둘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이후 마르슬랭은 우정을 나눌 다른 친구를 찾았지만, 르네만큼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지는 못했죠. 다행히 둘은 어른이 돼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만났어도 서로를 알아보는 일이 어렵지 않았어요. 빨간 얼굴과 재채기 소리는 어디서든 뚜렷이 드러났으니까요. 다시 만난 그들은 예전처럼 자주 만나며 따뜻한 우정을 나눴지요.

저자 '장 자크 상페'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삽화가예요. 글도 재치 있지만, 무엇보다도 낙서처럼 갈긴 듯한 그의 그림에 수많은 사람이 열광했죠. '꼬마 니콜라'부터 '좀머씨 이야기'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등 그가 그리거나 쓴 작품들이 수십 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로 소개됐어요.

한 프랑스 언론은 그의 작품에 대해 "따분한 천 편의 논문보다 현대인의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평가했어요. 이 책에서도 주인공 마르슬랭의 성(姓)을 '빨간 조약돌'이라는 뜻의 '카이유'라고 짓고 이들이 들려주는 따뜻한 우정을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과 인간관계에 대해 재미나게 풀어내고 있죠.


#이야기

'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오래된 중국 책에도 마르슬랭과 르네의 우정에 버금가는 이야기가 등장해요. 중국 춘추전국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와 그의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듣는 친구 '종자기'가 살았어요. 백아가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옆에서 "참으로 근사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눈앞에 나타나 있구나! "라고 말할 정도였죠. 둘은 늘 함께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다음, 평생 거문고를 타지 않았어요. 이 세상에 다시 자기 거문고 소리를 들려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 바로 '지음(知音)'이에요.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로 쓰인답니다.

마르슬랭과 르네, 백아와 종자기의 관계를 진정한 우정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서로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죠. 현대인들은 인터넷·스마트폰의 발달로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필요할 때는 친구 역할을 대행할 사람들을 구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때때로 외로움을 안겨줍니다. 그 이유는 내가 상대에게, 상대가 나에게 다른 누군가로 대체 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여러분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친구가 있나요?


[함께 생각해봐요]

서로 친하다고 느끼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생각해봅시다.

김대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