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예술혼… 태양에 불타다
입력 : 2015.03.20 03:07
모든 생명의 근원인 태양… 고대 이집트 때부터 숭배 대상
청각장애인이었던 화가 김기창과 '태양의 화가'라 불린 반 고흐… 태양을 통해 예술에 대한 열정 표현
태양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워요. 지구의 모든 생물은 태양에너지 덕분에 생명을 유지하니까요. 태양의 위대함을 잘 알고 있었던 인간은 오래전부터 태양을 숭배했어요. 고대 이집트, 그리스와 로마, 아즈텍과 잉카제국 등의 신화, 종교, 풍속에서 태양 숭배 사상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작품 1에서 이집트 파라오인 아크나톤이 가족과 함께 태양신을 경배하고 있네요. 아크나톤 왕은 왜 태양신에게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미술로 남겼을까요? 자신이 태양신 '라(Ra)'를 진심으로 숭배하고 있으며 태양의 아들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예요. 인간인 파라오가 태양의 자식이 된 배경이 궁금해지는군요.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은 오직 하나밖에 없고 달처럼 모양이 변하지도 않으며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요. 스스로 빛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신 광채를 내뿜어요. 파라오들은 이런 태양의 막강한 힘과 신성함을 왕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어요. 즉 백성의 절대복종과 충성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태양의 자식이 되었던 거죠.
작품 1에서 이집트 파라오인 아크나톤이 가족과 함께 태양신을 경배하고 있네요. 아크나톤 왕은 왜 태양신에게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미술로 남겼을까요? 자신이 태양신 '라(Ra)'를 진심으로 숭배하고 있으며 태양의 아들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예요. 인간인 파라오가 태양의 자식이 된 배경이 궁금해지는군요.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은 오직 하나밖에 없고 달처럼 모양이 변하지도 않으며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요. 스스로 빛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신 광채를 내뿜어요. 파라오들은 이런 태양의 막강한 힘과 신성함을 왕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어요. 즉 백성의 절대복종과 충성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태양의 자식이 되었던 거죠.
- ▲ 작품1 - 파라오 아크나톤과 왕비 네페르티티, 기원전 14세기. 작품2 - 고흐, 〈씨 뿌리는 사람〉, 1888년, 캔버스에 유채. 작품3 - 김기창, 〈태양을 먹은 새〉, 1968년, 두방에 수묵 채색. 작품4 - 올라푸르엘리아손, 〈날씨프로젝트(Weather Project)〉, 2003년. /Corbis 토픽이미지·운보문화재단 제공·조선일보 DB
우리나라의 화가 운보 김기창도 반 고흐처럼 태양을 동경했어요. 작품 3에 나오는 새의 색깔과 모양이 특이하군요. 몸은 빨갛고 날개는 황금빛으로 물든 데다 몸속은 훤히 비치네요. 새 몸 안에 황금빛 태양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그렇다면 이 새는 현실 속의 새가 아니겠군요. 지구의 어떤 새도 태양의 엄청난 열기를 견딜 수는 없을 테니까요. 새는 동서양 신화와 전설에 나오는 신비한 새인 피닉스(불사조)를 떠올리게 하네요. 피닉스의 몸은 붉은색, 날개나 깃털은 황금색이며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발한다고 전해지니까요. 생전에 김기창 화가는 "새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말했어요. 태양은 무엇을 뜻할까요? 예술에 대한 뜨거운 갈망과 열정이겠지요. 김기창 화가는 청각 장애인이었어요. 슬픔과 고통,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려면 태양 같은 강인함이 필요하죠. 불타는 태양도 먹을 수 있다는 용기와 각오가 있었기 때문에 김 화가는 한국화의 거장이 될 수 있었답니다.
덴마크 출신 예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은 태양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작품 4의 커다란 황금 원반 모양의 태양이 떠 있는 장소는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입구에 있는 터빈홀이에요. 어떻게 미술관 실내에 태양이 떠 있게 됐을까요? 이것은 실제 태양이 아니라 인공 태양이에요. 노란 전구 200여 개로 반원을 만들어 거울의 반사 특성을 이용해 미술관 실내에 태양이 떠 있는 듯한 착시 효과를 만들어냈죠. 이것은 미술관 실내에 인공 태양을 설치한 미술 작품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어요. 무려 2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전시를 감상할 정도였으니까요. 더욱 놀라운 것은 관람객들 반응이었어요. 마치 실제 태양 아래서 일광욕을 하듯 전시장 바닥에 눕거나 앉아서 인공 태양빛을 마음껏 즐겼거든요. 작가는 이런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원했어요. 관람객들에게 대자연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체험할 기회를 주고 싶었거든요.
오늘날 전 세계는 친환경 에너지인 태양에너지를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옛사람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태양을 숭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