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계유산 탐방] 세계 최고의 스위스 시계, 해발 1000m 산속 마을에서 만든대요
입력 : 2015.03.11 03:07
[12] 스위스 라 쇼드퐁·르 로클
3월 19일부터 26일까지(현지 시각) 스위스 바젤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 보석 박람회인 '2015 바젤월드'가 열려요. 시계 산업이 발달한 나라답게 스위스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계 제조업체와 시계 학교, 시계 박물관 등이 있답니다.
스위스는 유럽 중앙에 있는 나라로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요. 국토 대부분은 알프스 산맥을 비롯한 산악 지대와 고지대로 이뤄져 있죠. 프랑크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291년부터 스위스의 여러 주(州)는 자치를 위한 영구 동맹을 맺고, 이후 독립국으로 인정받아요. 1815년에는 빈 회의를 통해 영세중립국(독립과 영토 보존을 영구적으로 보장받는 나라)으로 국제적 승인을 받았답니다.
그렇다면 스위스에서는 어떻게 시계 산업이 발달하게 됐을까요?
스위스는 유럽 중앙에 있는 나라로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요. 국토 대부분은 알프스 산맥을 비롯한 산악 지대와 고지대로 이뤄져 있죠. 프랑크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291년부터 스위스의 여러 주(州)는 자치를 위한 영구 동맹을 맺고, 이후 독립국으로 인정받아요. 1815년에는 빈 회의를 통해 영세중립국(독립과 영토 보존을 영구적으로 보장받는 나라)으로 국제적 승인을 받았답니다.
그렇다면 스위스에서는 어떻게 시계 산업이 발달하게 됐을까요?
- ▲ 라 쇼드퐁과 함께 스위스 시계 산업의 심장부라 불리는 르 로클의 모습이에요. 이곳은 시계 제조업을 위해 스위스 정부가 만든 계획도시랍니다. /Corbis 토픽이미지
쥐라 산맥의 작은 산악 마을인 라 쇼드퐁과 르 로클은 시계를 만들기 위해 건설된 도시예요. 해발 1000m 위에 있는 이 도시는 공장을 짓거나 원자재를 운반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또한 겨울이 유난히 길고 해도 짧아서 농사를 짓기에도 부적합했기에 이곳 사람들은 시계 기술을 전수받아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지요. 시계 기술자들이 점점 늘면서 분업화와 전문화도 이뤄졌어요.
그러던 중 1833년을 비롯해 몇 차례에 걸쳐 큰불이 나 마을이 불탔고, 이후 도시계획으로 이 두 도시는 시계를 제조하기에 알맞도록 다시 지어졌어요. 계획도시답게 도로와 주택, 공장, 상점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배치됐죠. 이후 이 두 도시는 수세기 동안 한 산업을 유지하고 보존해 온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에 세계유산에 등록됐답니다.
지금도 이 도시에서는 수많은 장인이 섬세한 기술로 자동 태엽 시계, 방수 시계, 가장 작은 시계 등을 만들어 내고 있어요. 시계는 수백 단계 검사를 거치며, 어떤 단계에서는 수만 번 검사하기도 해요. 이처럼 스위스 시계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랍니다.
스위스 시계가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기까지는 어려움도 많았어요. 1970년대에 일본이 값싼 전자시계를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장인들의 소량 생산 위주 스위스 시계 산업은 큰 위기를 겪었죠. 하지만 스위스는 과감한 혁신과 도전으로 최고의 시계를 만들어내며 이를 극복했어요. 이러한 노력으로 스위스의 지난해 시계 수출액은 약 26조원이 될 만큼 전 세계인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1분 상식] 종교개혁이란 무엇인가요?
16~17세기 유럽에서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며 일어난 개혁 운동이에요.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을 고쳐 짓는 데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면벌부(재물을 바친 사람에게 벌을 면해주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를 판매했어요. 이에 독일의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면벌부 판매를 비판하며 종교개혁을 이끌었어요. 스위스에서는 칼뱅이 인간의 구원은 신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예정설'을 주장하며 종교개혁을 했죠. 종교개혁으로 신교가 생겼지만, 구교와 신교의 대립으로 신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얻기까지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