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미술관에 갔어요] 아름다운 우리 산천, 그 옛 모습을 찾아서

입력 : 2015.03.06 03:07

[98] 간송 문화 3부, '진경산수화-우리 강산, 우리 그림'展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300년 전 우리나라 경치 담아내
고층 아파트가 숲처럼 많은 압구정, 그땐 한적한 언덕과 정자뿐… 흘러간 세월의 흔적 느낄 수 있어요

사진기가 없었던 300년 전,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치 좋다는 국내 유명한 곳의 모습을 그림을 통해 볼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 시절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아주 좋았어요. 겸재 이전의 화가들은 주로 마음속 이상을 자연물로 표현하거나 중국의 시를 읽으면서 거기에 나오는 산천을 상상해서 그리곤 했거든요. 그러나 그는 달랐죠.

겸재의 그림은 진짜 우리나라의 경치를 그렸다고 해서 '진경(眞景)산수화'라고 부릅니다. 이는 화보나 다른 그림을 모방한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산천을 직접 답사해 화풍에 담았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답니다. 또한 우리 국토와 문화에 대한 애착이 담겨 있는 화풍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죠. 그는 우리 산천을 그릴 때, 그에 깃든 정신과 아름다움을 깨달아야만 멋진 작품이 나온다고 믿었어요.

겸재는 산천이 지닌 특징에 따라 알맞은 그리기 방식을 개발해 적용했어요. 우리나라의 산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그 하나는 설악산처럼 절벽이 많은 돌산, 다른 하나는 오대산이나 지리산처럼 돌이나 바위보다 흙이 많은 흙산으로 나눌 수 있어요. 겸재는 바위절벽은 세로로 가는 선을 그어 날카롭게 솟은 모양으로 표현하고, 흙산은 먹으로 굵직하게 가로 점을 찍어 풍성하고 촉촉하게 그렸어요.

작품1~3
작품 1은 이 두 가지 방식을 하나의 화면에서 볼 수 있어요. 오른쪽 위로는 세로로 솟은 가녀린 선들이 보이고, 왼쪽 아래로는 굵고 짧게 끊은 붓 자국들이 가로로 펼쳐져 있습니다. 세로는 하늘을 우러르고 있고, 가로는 땅으로 퍼져 있네요. 즉, 하늘의 섭리인 양(陽)의 기운과 땅의 섭리인 음(陰)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는 셈이지요.

겸재가 그린 도시의 모습을 보면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품 2를 보고, 지금 서울의 어디인지 맞힐 수 있나요?

왼편에 한자로 '광진(廣津)'이라고 쓰인 이 장소는 현재 워커힐호텔과 워커힐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는 광진구의 아차산 일대 모습이랍니다. 이곳에 한강을 건너는 큰 나루 중 하나인 광나루가 있었어요.

겸재가 살던 시대에는 전쟁이 없고 평화로워서 서울의 상류층이 걱정 없이 풍류 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고 해요. 아차산과 한강이 어우러지는 아리따운 경치로 인해 이 지역은 세력이 있는 집안들의 별장 지대로 주목받았다고 합니다. 그림에서도 아차산 기슭에 지어진 별장들이 눈에 띄네요.

고요한 강물 위로 돛단배가 둥둥 떠 갑니다. 요즘에는 돛단배 대신 다리가 놓여 있어요. 1937년에는 광진교가 놓였고, 그로부터 40년 후인 1976년에는 천호대교가 나란히 놓여 강물 위로 차들이 지나가지요. 게다가 지하철 5호선도 이곳 광나루를 통과하고 있답니다.

작품 3은 어디일까요? 힌트를 드릴게요. 그림 가운데에 정자가 있는 높은 언덕을 찾아보세요. 건축물이 있는 언덕 중 제일 오른쪽에 있어요. 그 정자가 바로 압구정(狎鷗亭)입니다. 현재 강남구 압구정동의 옛 모습이지요. 요즘 이곳엔 현대아파트와 한양아파트 등 고층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지요. 언덕 아래 흐르는 강물은 한강이에요.

당시 압구정에 올라서면 서울을 둘러싼 유명한 산들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었대요. 그런데 가만 보니 특히 눈에 띄는 산이 있네요. 오른편 위쪽 끝에 보이는 어두운 초록색 산 말입니다. 이 산은 바로 남산이랍니다. 애국가의 2절 가사에 나오듯, '남산 위에 저 소나무'가 산꼭대기에 서 있는 게 보이는군요. 다른 산들은 흐릿하게 그려져 있는데, 남산은 제법 멀리 있는데도 유난히 짙고 뚜렷하게 표현돼 있네요. 서울을 대표하는 산이라 그렇게 그렸을까요? 아니면 소나무 숲이 울창해서 실제로 그렇게 보였을까요?

언덕 아래 길게 뻗은 백사장 위에는 돛을 내려놓은 채 쉬는 배가 보이네요. 강을 건널 손님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뱃사공이 세월이 흘러 지금처럼 변한 서울의 모습을 본다면 깜짝 놀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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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