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자연은 최고의 요람… 뛰놀며 웃으며 자라요

입력 : 2015.03.04 10:09

[56] 오영수 '요람기'

전기도 없던 자연 속 어린 시절… 봄엔 들불놀이, 가을엔 콩서리, 겨울엔 썰매·연싸움 즐겼답니다
인간만이 갖는 특징인 '놀이'… 전통 배우고 친구 사귈 통로래요

몇 달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여가는 하루 평균 3.6시간이라고 해요.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한 질문에 51.4%가 TV 시청, 11.5%가 인터넷과 SNS 하기, 4.5%가 산책, 4.0%가 게임을 꼽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조사에 의하면 청소년들은 여가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그리고 컴퓨터게임과 TV를 시청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지요. 여러분도 이와 비슷한가요? 집 안에서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는 것 말고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예전 청소년들은 여가를 어떻게 보냈을까요?

오영수의 단편 소설 '요람기'의 주인공은 자연 속에서 뛰놀며 자라는 소년입니다. '요람'은 어린 아기를 태우고 흔들며 재우는 물건으로, '요람기'란 자연 속에서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을 뜻해요. 기차도, 전기도 없고 라디오와 영화도 몰랐던 시절, 주인공 소년은 동네 아이들과 봄이면 개울둑이나 논밭 두렁에 불을 놓는 들불놀이를 하며 너구리를 잡기도 했어요. 여름이 되면 냇가에서 멱을 감고 자맥질(물속에서 팔다리를 놀리며 떴다 잠겼다 하는 것)을 하며 게와 징거미를 잡았지요. 한낮의 더위가 물러가는 저녁이 되면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눴어요. 그러다 누렁 콩이 익어갈 무렵이면 아이들은 불을 지피고 그것을 구워 먹었죠.

 /그림=이병익
/그림=이병익
한동안 이렇게 콩서리를 해 먹고 나면 입 가장은 꼭 굴뚝족제비같이 까맣게 돼 가지고 서로 바라보면서 웃어댔다. 초가을 무렵부터 밤밭골에는 콩서리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지 않는 날이 별로 없었다.

구수하고 달큰한 콩을 먹고 있으면 어른들은 지나가며 "이놈들 한 밭에서만 너무 많이 꺾지 마라!" 얘기할 뿐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어른들도 아이 때 밀서리며 콩서리를 한 까닭이지요. 찬 바람이 매섭게 불기 시작하면 박달나무로 만든 팽이치기도 하고, 얼음판에서 신나게 썰매를 탔어요. 어른과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연싸움을 하기도 했어요.

언제나 가보고 싶으면서도 가보지 못하는 산과 강과 마을, 어쩌면 무지개가 선다는 늪, 이빨 없는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산다는 산속, 집채보다 더 큰 고래가 헤어 다닌다는 바다, 별똥이 떨어지는 어디메쯤-소년은 이렇게 떠가는 연에다 수많은 꿈과 소망을 띄워 보내면서 어느새 인생의 희비애환과 이비(옳고 그름)를 가릴 줄 아는 나이를 먹어 버렸다.


#이야기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인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고 불렀어요. 그는 인간의 역사를 연구하고 나서 놀이야말로 인간의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논다는 것'은 사람과 다른 동물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소이며 인간은 놀이를 통해 인생관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요한 하위징아는 정신적인 창조 활동인 놀이가 인간의 상상하는 힘을 키웠으며 놀이 속에서 도구나 예술 작품, 제도를 만들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노는 것에서부터 문화가 시작됐고, 놀이 속에서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이죠.

 눈 축제를 찾은 어린이들이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있어요. 밖에서 뛰어노는 것은 콘크리트 숲에서 컴퓨터게임만 했을 때와는 다른 재미를 준답니다. /김지호 객원기자
눈 축제를 찾은 어린이들이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있어요. 밖에서 뛰어노는 것은 콘크리트 숲에서 컴퓨터게임만 했을 때와는 다른 재미를 준답니다. /김지호 객원기자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말했어요. 놀이를 통해 규칙도 배울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사귈 수 있다고 확신했거든요. 요람기 속 소년들도 놀이를 통해서 자연과 하나가 됐고 마을의 전통을 익혔죠. 또한 생활의 지혜를 배우며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에 반해 요즘 청소년들의 놀이 문화를 보면 걱정이 앞서요. 특히 집 안에서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친구들과 얘기하고 혼자서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소비주의와 상업주의에 물든 어른들의 놀이 문화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지요.

잘 놀고 잘 쉬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그래야 자아 존중감이 높아지고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지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3월입니다.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작품 속 아이들처럼 신나게 어울려 놀며 공부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우정도 돈독하게 다져보세요.


[함께 생각해봐요]

요람기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입니다. 작가는 왜 이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선택했을까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박주영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