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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류성룡, 그가 '징비록'을 남긴 곳
입력 : 2015.03.04 09:59
| 수정 : 2015.03.04 09:59
[113] 하회 옥연정사
요즘 인기리에 방송 중인 사극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다루고 있어요. 징비록은 드라마 제목이기 이전에 책 제목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라는 최고 관직과 전시 총사령관 격인 도체찰사를 맡았던 서애 류성룡(1542~1607)이에요. 우리가 잘 아는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을 발탁해서 왜구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랍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왜구에 의해 백성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을 보고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기록문이랍니다. 그래서 징비록은 기록문학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제132호로 지정돼 있어요.
실제 징비록은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 정세와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의 실상, 그리고 임진왜란이 끝난 상황까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요. 미처 전쟁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왜군의 침략으로 불과 두 달도 안 돼 조선 팔도가 모두 적에게 넘어가 버린 상황을 자세하게 써 놓았죠.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전쟁에 참여하게 됐으며 공을 세우고도 왜 백의종군하는지, 그리고 다시 수군통제사가 돼 왜군을 무찌르고 전사하기까지의 이야기도 기록돼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은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랍니다.
실제 징비록은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 정세와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의 실상, 그리고 임진왜란이 끝난 상황까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요. 미처 전쟁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왜군의 침략으로 불과 두 달도 안 돼 조선 팔도가 모두 적에게 넘어가 버린 상황을 자세하게 써 놓았죠.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전쟁에 참여하게 됐으며 공을 세우고도 왜 백의종군하는지, 그리고 다시 수군통제사가 돼 왜군을 무찌르고 전사하기까지의 이야기도 기록돼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은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랍니다.
- ▲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머물며 징비록을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옥연정사예요. 징비록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더불어 임진왜란의 참담함을 눈에 보듯 표현한 작품이죠. /토픽이미지
오늘 찾아갈 곳은 류성룡이 고향으로 내려가 징비록을 쓴 장소인 경상북도 안동시 옥연정사예요. 중요민속자료 제88호로 지정되기도 한 이곳은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하지요. 이곳에서 류성룡은 글도 쓰고, 제자들을 가르치곤 했답니다. 평생 청렴결백하게 살았던 류성룡은 높은 벼슬을 했지만, 실제 생활은 가난했어요. 작은 서당을 짓고 싶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못했죠. 그러자 가까이 지내던 탄홍이라는 스님이 10년 동안 시주를 해서 이곳을 완공했답니다. 처음에는 이름도 옥연서당이었답니다. 옥연(玉淵)이라는 이름은 류성룡이 직접 지었는데, 그곳 앞에 흐르는 강물이 옥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해요.
바로 옆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면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이 학문을 연구하던 겸암정사가 있어요. 그리고 뒷산으로 올라가면 하회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부용대가 있어요. 강물이 마을을 S 자로 감싸고 도는 장관도 볼 수 있죠. 하회마을이라는 이름도 강이 마을을 감싸고 돌아 흐른다는 의미로 붙여졌죠.
하회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한국의 역사 마을로서 풍산 류씨 가문이 모여 살던 집성촌이에요. 하회마을에 가면 류성룡의 종택 충효당이 있죠. 종택이란 종가가 대대로 사용하는 집을 말해요. 1600년대에 지어진 충효당은 조선시대 생활유적지로 보물 제414호로 지정된 곳이랍니다.
이 집은 실제 류성룡이 살던 집은 아니에요. 류성룡이 마지막까지 살던 집은 지금의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의 초가집이었어요. 충효당은 이후 손자와 류성룡의 제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지은 집이랍니다. 지금도 안채에는 종손이 살고 있어 출입이 금지돼 있어요. 충효당 뜰에는 지난 199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한 기념으로 심은 구상나무가 있어요. 징비록은 종손 집에서 대대로 보관하다 지금은 경북 안동시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이 보관하고 있어요.
[1분 상식] 임진왜란이란 무엇인가요?
일본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우리나라를 침입했어요. 임진년에 일어난 1차 침입을 '임진왜란', 정유년에 일어난 2차 침입을 '정유재란'이라고 하지만, 임진왜란이라고 할 때는 보통 이 두 전쟁을 모두 포함해 말한답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크게 물리친 3대 대첩으로는 한산도대첩·진주성대첩·행주대첩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