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영화 시상식에선 왜 레드카펫을 깔까
입력 : 2015.02.27 03:06
| 수정 : 2015.02.27 07:04
[염색 기술의 역사]
고대 서양 권력자만 입던 자주색 옷… 제조 어려워 금보다 가치 있다 여겨
제작법 사라지자 대신 붉은색 사용
붉은 카펫은 '신의 길'이라 불리며 나폴레옹 대관식·귀빈 접대에 쓰여
설 연휴 동안 영화 한 편쯤은 보게 마련이지요. 요즘은 극장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많아졌어요. 그만큼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영화제나 시상식도 많아졌지요. 그래서인지 행사가 열린 날, 어느 여배우가 어떤 드레스를 입었는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기도 해요. 배우들이 걸어가는 길에는 레드카펫이 길게 놓여 있죠. 최근에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귀한 손님이나 유명인을 맞이할 때는 레드카펫을 이용하는 걸까요?
- ▲ 현지 시각으로 지난 22일에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 여배우가 레드카펫 위에서 한껏 자신을 뽐내고 있습니다. /AP 뉴시스
페니키아인들은 염색에 관심이 많았어요. 지중해에 사는 '푸르푸라(purpura)'라는 소라의 내장을 항아리에 넣고 끓이면 고약한 냄새와 함께 자주색 물감을 얻을 수 있었지요. 푸르푸라에서 영어로 보라색을 뜻하는 퍼플(purple)이라는 말이 나왔답니다. 그런데 만드는 방법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적은 양의 염색 물감만 나왔지요. 1g의 자주색 물감을 얻기 위해서는 1만개나 되는 소라가 필요했어요. 더 많은 물감을 얻기 위해 인근에 있는 바닷가의 바위를 파서 소라 양식장을 만들었죠. 부서진 소라 껍데기들은 언덕을 이룰 만큼 쌓여갔어요. 당연히 이렇게 염색한 옷감은 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싼 가격에 거래됐죠. 그리고 물감을 만드는 방법은 극비리에 유지됐어요. 자주색 옷을 입는다는 것은 부와 권력, 사치와 향락의 상징이 됐지요.
자주색 물감을 만드는 방법은 로마 제국으로 이어졌어요. 성경에는 로마 군인들이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혀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주색이 왕의 복장이었기 때문이지요. 로마제국이 분열되고 나서 비잔틴 제국에서는 직접 염색 물감을 생산하고 판매를 관리했어요.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 고귀한 황제와 추기경을 상징하는 색으로 삼았어요. 532년 성소피아 성당을 짓느라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던 시민이 니카의 반란을 일으켰을 때, 도망가려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게 테오도라 황후가 "폐하가 입고 계신 자주색 옷은 가장 큰 권위를 상징합니다. 이 자주색 옷을 수의(壽衣)로 삼아 당당히 맞서세요"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 ▲ (왼쪽)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인 바실리우스 2세의 모습이에요. 자주색 옷에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네요. 당시 왕의 복장에는 자주색이 빠지지 않았다고 해요. (오른쪽)라파엘로가 그린 레오 10세 교황의 초상화예요. 레오 10세를 비롯해 추기경들이 붉은색 망토를 입고 있네요. 이때 붉은색은 고귀한 신분을 상징합니다. /위키피디아
중세 서양에서는 붉은색 옷 한번 입어보는 게 소원인 사람도 생겨났어요. 실제로 루터의 종교개혁 영향으로 1524년 독일에서 대규모 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였어요. 이후 농민들은 '메밍겐의 12개 조항'을 요구했는데, 그중 하나는 빨간 망토를 입게 해달라는 것이었죠. 모든 사람이 똑같이 붉은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은 농민의 지위가 올라가고 평등해진다는 의미였거든요. 전쟁에 가담한 30만 명의 농민 중 10만 명이 잔인하게 학살되면서 이 소원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어요.
이렇게 고귀한 붉은색 천이 바닥에 깔리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아이스킬로스가 쓴 '오레스테이아: 아가멤논 편'에 처음으로 나옵니다. '붉은 길은 오직 신의 길'이라고 표현했죠. 나폴레옹 1세도 황제가 돼 대관식을 할 때 붉은 카펫을 깔았죠. 나폴레옹의 권위를 신처럼 나타내기 위해서였겠지요. 이후 유럽 왕실에서 외국의 귀빈에 대한 극진한 환영의 의미로 지나가는 길에 레드카펫을 사용해 왔답니다. 헌신과 열정, 사랑, 피, 성령을 상징하는 붉은색의 이면에는 권력이 숨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