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나와 다른 인생, 정말 잘못된 삶일까
입력 : 2015.02.25 03:07
| 수정 : 2015.02.25 09:11
[55] 채만식 '치숙(痴叔)'
일제에 동화돼 열심히 사는 '나'
신념 지키려 감옥 간 지식인 삼촌을 가장답지 못하다고 한심하게 여겨
'나'는 '어리석은 숙부'라 평하지만 독자마다 의견 엇갈린답니다
여러분은 어떤 가치관을 가졌나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일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다시 질문해 볼게요. 여러분 눈앞에 한 가지 소원만 빌 수 있는 마법 램프가 있습니다. 그럼, 어떤 소원을 빌고 싶나요? '로또 당첨' 같은 금전적 행운이 있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물질적 풍요'를 중시하는 가치관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겠죠. '세계 배낭여행'을 소원한다면 '다양한 경험'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졌다고 봐도 되죠. 정리해보면 가치관이란 삶이나 어떤 대상에 대해 무엇이 좋고, 옳고,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관점입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 바로 그때 가치관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가치관이 모두 같을 수는 없기에 때로는 갈등이 벌어지기도 하죠.
- ▲ /그림=이병익
이 작품은 철저하게 '나'의 관점에서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바라봅니다. '나'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인 상점에서 일하면서 일본인 주인에게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나'의 인생 목표는 바로 열심히 돈을 모아서 자신만의 가게를 얻어 독립하는 것입니다.
이런 '나'의 눈에 비친 '아저씨'는 나라(여기서는 '일제'를 의미함)에서 금지한 사회주의 운동을 하며 착한 아주머니까지 내팽개친 '나쁜'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하지 말라는 사회주의에 대한 허황한 꿈과 이상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감옥을 몇 번씩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도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덕분에 아주머니는 하루하루 힘겨운 생계를 이어갑니다. '나'는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가는 아저씨가 한심하고 화가 나서 "왜 그렇게 사느냐?"며 따집니다. 아저씨에 대한 '나'의 생각을 살펴볼까요?
"사람 속 차릴 여망 없어요. 그저 어디로 대나 손톱만치도 쓸모는 없고 남한테 사폐만 끼치고 세상에 해독만 끼칠 사람이니, 뭐 하루바삐 죽어야 해요. 죽어야 하고, 또 죽어야 마땅해요. 그런데 글쎄 죽지는 않고 꼼지락꼼지락 도로 살아나니 성화라고는, 내…."
- ▲ 재난 위기에 놓인 집을 찾아가 수리를 하고 벽화를 그려주는 봉사활동가들의 모습이에요. 이들은 다른 사람을 위하고 사랑하는 봉사 정신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죠. 여러분은 어떤 가치관을 우선으로 하나요? /뉴시스
'나'가 이야기하는 '아저씨'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하는 무능력자입니다. 한편 '나'는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자신의 위치에서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볼 때 '나'는 물질적 풍족함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친일 행위를 일삼는 파렴치한입니다. 여러분은 '아저씨'와 '나'를 각각 어떻게 평가하나요?
#이야기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표현이 있어요. '다르다'는 '같다'의 반대말로 비교했을 때 '같지 않은 경우'를 의미하고, '틀리다'는 '맞다'의 반대말로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난 경우'를 뜻합니다. 분명히 다른 뜻의 단어이지요. 그런데 간혹 우리 주변에서 이를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있어요. 의미를 알고 있다면 둘을 혼동해 사용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를 '나와는 틀린 사람이다'로 잘못 표현한다면 비문이 될 뿐 아니라 의미 자체가 많이 달라지겠죠?
작품의 제목인 치숙(痴叔)은 어리석은 삼촌, 작품 속 아저씨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작가는 제목 그대로 삼촌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요? 작가는 아저씨에 대한 '나'의 극단적 평가를 통해 '치숙'이 정말 한심한 사람일까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오히려 일제강점기 때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이기심을 우회적으로 풍자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작품 속 '나'처럼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를 우선시하는 삶이 잘못됐다고 판단하나요? 아니면 현명하다고 생각하나요? '나'의 가치관은 '틀린 것'일까요? '다른 것'일까요?
[함께 생각해봐요]
선택의 순간에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한 적이 있나요? 이러한 경험을 떠올려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