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편지 한 통서 시작된 사랑… 이베리아 반도 통일하다
입력 : 2015.01.23 03:06
| 수정 : 2015.01.23 09:03
[스페인의 탄생]
이사벨 공주, 페르난도와 결혼하며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하려고 해요
부부는 이슬람 세력 공격하며 800년 만에 그라나다까지 정복해… 반도 전체를 가톨릭으로 만들죠
지난해 말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큰 화제를 모았어요. 주인공 할머니는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얼굴도 모르고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하지만 7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들은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살았지요. 세계사 속에도 이들 못지않게 서로 사랑한 부부가 있어요. 스페인의 역사를 뒤바꾼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가 그 주인공입니다.
- ▲ 이사벨·페르난도 부부는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가톨릭의 나라로 통일해야겠다는 목표 아래 그라나다 정벌에 나섰고, 1492년에 항복을 이끌어냈지요. 가운데 흰 말을 탄 사람이 이사벨 여왕이에요. /위키피디아
이사벨은 엔리케 4세에게 충성을 다했어요.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무능한 왕이었어요. 카스티야는 혼란에 빠졌고, 후계자를 둘러싼 논쟁도 끊이지 않았지요.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동생 알폰소 왕자마저 병으로 죽고, 이사벨과 포르투갈 왕 사이의 결혼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어요. 15세기 무렵 이베리아 반도는 가톨릭을 믿는 포르투갈, 카스티야, 아라곤 그리고 이슬람을 믿는 그라나다 왕국으로 나뉘어 영역을 놓고 다투고 있었는데, 이사벨의 결혼으로 포르투갈과 동맹을 맺고 싶었던 거예요. 이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이사벨은 각국의 왕과 왕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왕은 나약하고, 포르투갈 왕은 나이가 많았기에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때 아라곤으로 보낸 사람에게서 멋진 외모와 좋은 성품을 타고났다는 페르난도 왕자의 소식을 들었지요. 당시 열여덟 살이던 이사벨은 열일곱 살인 페르난도에게 편지를 써서 먼저 청혼하였답니다.
- ▲ 가난한 공주였지만, 현명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스페인 제국의 길을 연 이사벨 1세 여왕. /위키피디아
엄밀하게 생각해 보면 두 나라의 법률이나 화폐가 모두 다르고, 조세 제도도 달랐기 때문에 통일국가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 두 사람의 결혼이 스페인 통일의 시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영토가 넓어지고 왕권은 더욱 강화되어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졌기 때문이에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이사벨·페르난도 부부는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가톨릭의 나라로 통일해야겠다고 결심하였어요. 강해진 왕권을 기반으로 군대를 만들고 그라나다를 공격할 준비를 시작했지요. 이베리아 반도는 로마제국 이후로 가톨릭을 믿던 지역이었는데, 711년 이슬람교를 믿는 우마이야 왕조가 들어서면서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어요. 가톨릭 왕국이 조금씩 세력을 키워 영토를 확장하면서 그라나다를 제외한 모든 지역은 회복한 상황이었지요. 전쟁이 시작되자 페르난도는 전쟁터에서 군대를 이끌었고, 이사벨은 병사를 치료하며 후원하였어요.
무려 800여 년에 걸친 가톨릭과 이슬람 세력의 싸움에서 가톨릭이 승리한 거예요. 교황 알렉산드르 6세는 이사벨과 페르난도를 '가톨릭의 수호자'라고 부르며, 이들에게 '가톨릭 왕들'이라는 칭호를 내렸지요. 카스티야·아라곤·그라나다는 한 나라가 되었고요. 이 사건을 레콘키스타(Reconquista·재정복 운동)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라는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손자인 카를 5세 때 완전한 한 국가로 합쳐져 오늘날의 스페인이 되었어요. 유럽에서 셋째로 영토가 넓은 나라, 스페인의 역사 속에는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1세의 사랑이 담겨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