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여행

진흙으로 쌓은 토성, 서울에 수도 세웠던 백제의 흔적이죠

입력 : 2015.01.21 03:06 | 수정 : 2015.01.21 09:29

[110] 몽촌토성

백제시대 하면 흔히 충청남도 공주와 부여를 떠올립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 문화 유적지 대부분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백제가 시작되고 부흥하였던 곳은 공주나 부여가 아닌 지금의 서울이었답니다. 그 흔적을 서울 송파구에 있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한성백제박물관 등에서 볼 수 있어요.

백제 역사는 도읍지에 따라 크게 한성 시대(BC 18~AD 475년), 웅진 시대(475 ~538년), 사비 시대(538~660년)로 나뉘어요. 한성은 지금의 서울, 웅진은 충남 공주, 사비는 충남 부여 지역을 가리키지요. 백제 성왕(재위 523∼554년)은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 이남 지역을 되찾고자 신라 진흥왕과 동맹을 맺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였어요.

몽촌토성은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성으로 사적 제297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몽촌토성은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성으로 사적 제297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corbis 토픽이미지
오늘 찾아갈 곳은 백제 성왕이 다시 찾으려 했던 백제 땅 중 한 곳인 몽촌토성이에요. 서울 올림픽공원 안에 있어서 찾아가기도 쉬워요. 몽촌토성 산책로를 따라 만들어진 걷기 코스를 따라 걸으면 몽촌토성 전체를 둘러볼 수 있지요.

몽촌토성은 야트막한 구릉(丘陵)으로 연결된 타원형 토성으로, 둘레는 약 2.7㎞예요. 구릉은 그대로 산성으로 이용하고, 구릉이 끊기거나 낮은 곳에 진흙으로 성벽을 쌓아 만들었지요. 때로는 나무 말뚝을 받아 목책(木柵·말뚝을 박아 만든 울타리)을 세우기도 했어요. 그 외곽에는 해자를 둘렀고요.

몽촌토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어요. 발굴된 유물 등을 통해 역사학자들이 그 시기를 추정할 뿐이지요. 몽촌토성은 1980년대 서울올림픽(1988)을 앞두고 올림픽공원을 조성하면서 발굴되었는데, 학자들은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몽촌토성이 백제가 국가를 형성하던 3~4세기경 세워진 것으로 추정해요. 또한 몽촌토성에서는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의 유물도 발견되었어요. 이를 통해 백제가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나서 이곳에 고구려 사람들이 살았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 12기의 움집터, 주춧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들의 터 등도 발굴되었어요. 움집 모양에 따라 사람들이 살기도 했고 무기를 보관했던 것도 알 수 있고요. 또한 집터 중에는 조선 시대 온돌 건물터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던 통일신라 시대 유물이나 고려 시대 유물은 발굴되지 않았답니다.

백제인이 왜 몽촌토성을 지었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위치나 규모, 출토 유물로 볼 때 백제 초기의 군사·문화적 성격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유적임은 틀림없어요. 주변에는 풍납토성과 백제 석촌동 고분 등 또 다른 백제 전기 유적도 있답니다. 몽촌토성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을 찾아가보면 좋을 거예요.


몽촌토성의 해자. 과거에는 중요한 방어 시설이었습니다.
몽촌토성의 해자. 과거에는 중요한 방어 시설이었습니다. /corbis 토픽이미지
[1분 상식] '해자' 란 무엇인가요?

해자는 적이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고 성 둘레에 만든 연못이에요. 다른 이름으로 굴강, 외호, 성호라고도 불리지요. 해자가 주로 발견되는 시설물은 성곽과 고분입니다.

몽촌토성 이외에도 수원 성곽, 공주 공산성 등에 해자를 설치한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 일본 모두 고대부터 중세 시대의 성곽 바깥에는 해자를 둘러 성곽을 보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임후남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