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숫자, 인도서 만들었는데 왜 이름은 아라비아일까

입력 : 2015.01.09 03:05 | 수정 : 2015.01.09 09:04

[아라비아 숫자]

아라비아 상인에 의해 널리 퍼져 이름 붙게 된 '아라비아 숫자'
13세기까지 이어진 십자군 원정 때 유럽인도 편리한 숫자 배우기 시작… 19세기엔 중국 등 동양서도 쓰였죠

지금쯤이면 새 달력을 보면서 올해 계획을 세운 어린이가 많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은 혹시 다른 나라의 달력을 본 적이 있나요? 신기하게도 달력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세계 공용어에 가까운 아라비아 숫자로 적혔기 때문이에요. 전 세계인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자를 쓰면서도, 숫자만은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지요. 아라비아 숫자는 '0, 1, 2,…, 9'의 10개 숫자만 있으면, 그 어떤 큰 수도 편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위대한 발명품이랍니다. 그런데 사실 아라비아 숫자는 아라비아인이 만든 게 아니에요. 인도 사람들이 만들었지요. 왜 인도인이 만든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궁금하지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숨어있는 세계사] 숫자, 인도서 만들었는데 왜 이름은 아라비아일까
아주 먼 옛날 숫자가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어떻게 수를 셌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손가락·발가락 등 몸을 이용해서 세었어요. 양 한 마리에 돌멩이를 하나씩 일대일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었고요. 벽이나 찰흙판에 필요한 만큼 줄을 그어서 표시하기도 했어요. 중국 한자에서 수를 나타내는 '일(一), 이(二), 삼(三)'은 이런 원리로 만들어졌지요. 고대 로마와 그리스 같은 곳에서는 나무에 세로로 줄을 긋기도 했답니다. 'Ⅰ, Ⅱ, Ⅲ'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큰 수를 나타내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잉카 문명에서는 양털이나 솜을 이용해서 화려한 목걸이를 만들 듯이 여러 가닥의 끈을 달고 거기에 '퀴푸(quipu)'라는 매듭을 묶어서 수를 세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 방법은 세계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오늘날 우리가 편리하게 쓰는 숫자는 인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강 유역에서는 인더스문명이라는 청동기문명이 발달하였어요. 상업이 발달하면서 당시 사람들에게 숫자가 매우 중요해졌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때 사용하였던 문자는 아직 완벽하게 해독되지 않았다고 해요. 이후 철기를 사용한 아리아인이 들어오면서 인도 문명은 본격적인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숫자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하였어요. 이 시기에 만들어진 문자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아라비아 숫자의 기원이 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인도 지역에서는 마우리아 왕조, 쿠샨 왕조를 거쳐 4세기경 굽타 왕조가 들어서요. 굽타 왕조는 '인도 고전 문화의 황금기'라고 불릴 만큼 융성하였어요. 오늘날 인도를 대표하는 힌두교 문화도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졌지요. 모든 숫자가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0'의 개념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였습니다. 인도 산스크리트어에는 '슈나'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없음'을 뜻하는 철학적 용어였어요.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작은 점을 찍거나 동그라미 기호를 붙였는데, 이 기호가 0의 시작이 되었답니다. 굽타 시대의 인도 수학자들은 이러한 숫자들을 이용하여 편리하게 계산을 하였지요.

(왼쪽)고대 로마인이 썼던‘로마 숫자’는 오늘날에도 벽시계 등에서 자주 볼 수 있어요. (오른쪽 위)이집트 카르나크 신전에는 고대 이집트인이 썼던 숫자가 적혀 있어요. (오른쪽 아래)아라비아 숫자는 11~13세기에 일어난 십자군 원정을 통해 유럽에 널리 퍼졌어요.
(왼쪽)고대 로마인이 썼던‘로마 숫자’는 오늘날에도 벽시계 등에서 자주 볼 수 있어요. (오른쪽 위)이집트 카르나크 신전에는 고대 이집트인이 썼던 숫자가 적혀 있어요. (오른쪽 아래)아라비아 숫자는 11~13세기에 일어난 십자군 원정을 통해 유럽에 널리 퍼졌어요. /위키피디아·셔터스톡·위키피디아
편리한 인도 수학을 빠르게 받아들인 이들이 바로 아라비아 상인이었어요. 동서양을 누비며 상업을 발달시키고 이슬람교를 전파하던 이들은 인도 숫자의 편리함과 실용성에 감탄하며 이를 사용하였지요. 아라비아인은 지적 호기심이 강해서 무엇이든 받아들여 연구하곤 하였거든요. 유명한 이슬람 수학자 알 콰리즈미(al-Khwarizmi·780~850)가 쓴 책에도 인도 수학의 원리가 자세히 나와 있어요. 인도 숫자는 아라비아인에 의해 널리 쓰이면서 점차 오늘날 우리가 쓰는 모양과 비슷해졌습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숫자는 아라비아를 거쳐 10세기경 유럽 서쪽의 스페인에 전해졌어요. 당시 스페인 지역을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였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로마 숫자를 사용하던 유럽 사람들은 새로운 숫자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랍인이 사용하는 악마의 기호'라고 부르며 반발했다고 하지요. 이 숫자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11세기 말부터 13세기에 걸쳐 일어난 '십자군 원정'이었어요. 십자군 원정은 그리스도교 성지인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시작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상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아라비아 사람들이 쓰는 편리한 숫자와 계산법을 배우는 유럽인이 점점 늘었지요. 19세기에 들어서자 중국, 일본 등 동양에서도 이 숫자가 널리 쓰였고요. 이렇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간 이 숫자는 '아라비아인이 쓰는 숫자'라고 하여 '아라비아 숫자'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사실은 '인도-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는 게 더 옳겠지요?

어린아이도 쓸 만큼 쉬운 인도-아라비아 숫자 덕분에 사람들은 큰 수를 마음껏 표시하고, 더하기·빼기·곱하기·나누기 같은 연산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수학, 과학, 금융, 건축, 천문 등 모든 분야가 빠르게 발달하며 인류 생활이 변하기 시작하였지요. 지금 우리 생활은 숫자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예요. 이렇게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숫자에도 인류의 역사가 담겼답니다.


공미라 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