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리더

순수·상업미술 경계를 깨고… 20세기 '팝아트' 개척한 거장

입력 : 2015.01.08 03:05 | 수정 : 2015.01.08 09:05

[48] 앤디 워홀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사진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Corbis/토픽이미지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미술은 특별한 사람만 즐기는 문화로 여겨졌어요. 하지만 20세기 들어 '팝아트(pop art)'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면서 미술은 대중에게 더 친숙해졌답니다. '대중예술(popular art)'을 줄인 말인 팝아트는 콜라병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물체로 표현하는 미술 장르이거든요. 이러한 팝아트를 대중에 널리 알린 예술가가 바로 앤디 워홀(1928~1987)이에요.

앤디 워홀은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척박한 공장 지대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앤디는 미술을 정말 사랑하였어요. 그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잡고 그림을 그렸지요. 초등학교 때는 방학 내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병약하였지만, 미술 선생님이 추천한 카네기뮤지엄 예술학교만은 빠지지 않고 다녔고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형과 과일을 팔면서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어른이 된 앤디는 뉴욕으로 향합니다. 그는 뉴욕에서 수많은 잡지사와 디자인 회사를 찾아다니며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고 자신을 소개하였어요. 아무도 그를 봐주지 않고, 끊임없이 무시당해도 포기하지 않았지요. 마침내 앤디의 작품이 잡지와 광고를 통해 서서히 알려지면서 그는 20대 나이에 상업미술가로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앤디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어요. 그는 순수미술가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지요.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상업미술은 특정 제품 등에 맞춰 당시 대중이 원하는 스타일로 작품을 제작해요.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거나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작품의 생명도 끝나지요. 하지만 예술가가 자신이 원하는 주제를,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순수미술에는 이런 유효기간이 없어요. 앤디 워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수백 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남기고 싶었답니다.

'캠벨 수프 통조림' 작품 사진
/블룸버그

새로운 작업 방식을 찾던 앤디는 지금까지 상업미술을 해온 장점을 살리기로 해요. 대중에게 친숙하면서도 자기만 시도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로 한 것이에요. 그는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캠벨 수프 통조림'〈왼쪽 사진〉을 다양하게 묘사합니다. 그러고는 1962년 개인전을 열어 총 32점의 통조림 그림을 선보이지요. 온통 통조림 그림뿐인 전시회에 대해 큰 논란이 일었지만, 전시회는 대성공이었어요. '가장 흔한 것도 얼마든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으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앤디의 말도 대중의 뇌리에 새겨졌지요.

그 후에도 앤디는 도전을 계속했어요. 실크스크린으로 작품을 대량생산하고, 초상화를 그릴 때 사진을 찍어 활용하였으며 '최후의 만찬'(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고전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을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영화감독, TV 프로그램 제작자로도 활동하며, '인터뷰'라는 잡지까지 창간하였지요. 앤디 워홀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팝아트의 거장이자 20세기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어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그의 뜨거운 열정과 노력이었답니다.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 작품 사진
앤디 워홀은 인기 여배우 ‘메릴린 먼로’ 등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Corbis/토픽이미지

[1분 상식] 실크스크린이란 무엇인가요?

실크스크린(silk screen)은 다양한 판화 기법의 하나예요. 제작 과정이 비교적 간단하고, 짧은 시간에 수십 장을 찍어낼 수 있어 상업적 포스터 등에 많이 이용돼요. 실크스크린을 할 때는 비단·나일론 등을 틀에 고정하고, 인쇄되지 않는 부분에 고무액 등을 입혀 잉크가 통과하지 못하게 해요. 여기에 잉크나 물감 등을 문지르면 천의 미세한 구멍을 통하여 잉크(물감)가 흘러내려 아래 깔아놓은 종이에 무늬가 인쇄되지요.

박영진·후(who) 시리즈 위인전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