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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3대 도둑' 임꺽정, 이곳에서 의적(義賊)으로 거듭났답니다
입력 : 2015.01.07 03:05
| 수정 : 2015.01.07 09:14
[109] 경기 안성 칠장사
여러분은 '도둑' 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무섭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유명한 세 명의 도둑이 있었어요. 홍길동과 임꺽정, 장길산이에요. 조선시대 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이라는 책에서 이들을 '조선 3대 도둑'으로 꼽았답니다. 도둑이 어떻게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까요? 자기를 위해 도둑질한 게 아니라 탐관오리 등 나쁜 사람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의적(義賊)'이라고 불렸답니다.
조선은 철저한 신분사회였어요. 특히 천민에 대한 차별이 심했지요. 천민은 아무리 똑똑해도 공부할 수 없고, 그 신분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활동한 임꺽정도 천민인 백정(소·돼지 등을 잡는 일을 하는 사람) 출신이었지요. 이들은 단지 신분 때문에 차별받으며 사는 것이 불만이었어요. 특히 가난한 백성에게 가혹한 세금을 거둬 자기 배를 불리는 탐관오리를 보며 더욱 화가 났지요. 결국 이들은 뜻이 같은 사람을 모아 탐관오리의 집을 털고, 훔친 물건들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줍니다.
조선은 철저한 신분사회였어요. 특히 천민에 대한 차별이 심했지요. 천민은 아무리 똑똑해도 공부할 수 없고, 그 신분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활동한 임꺽정도 천민인 백정(소·돼지 등을 잡는 일을 하는 사람) 출신이었지요. 이들은 단지 신분 때문에 차별받으며 사는 것이 불만이었어요. 특히 가난한 백성에게 가혹한 세금을 거둬 자기 배를 불리는 탐관오리를 보며 더욱 화가 났지요. 결국 이들은 뜻이 같은 사람을 모아 탐관오리의 집을 털고, 훔친 물건들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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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안성에 있는 칠장사예요.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이 이곳에서 스승 병해대사에게 글과 무예를 배웠대요. /사진=임후남
임꺽정은 황해도, 평안도, 경기도를 거쳐 한양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어요. 그러자 그를 영웅시하는 백성도 크게 늘었지요. 조정에서는 하루빨리 임꺽정을 잡아들이고 싶었지만 그를 잡기란 쉽지 않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임꺽정 무리는 모이면 도적떼가 되지만, 흩어지면 일반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관군이 대대적인 토벌 작전에 나서자 임꺽정 무리의 세력도 점차 약해졌습니다. 결국 1562년 1월 임꺽정은 관군에게 붙잡혀 15일 만에 죽고 맙니다. 임꺽정은 관군에 쫓길 때도 곧잘 칠장사에 몸을 숨기곤 하였대요.
칠장사 말고도 임꺽정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 또 있어요. 바로 강원도 철원의 고석정이에요. 임꺽정이 무술을 닦으며 은신했던 곳인데, 계곡이 아름답기로 유명해요. 고석정 입구에는 임꺽정의 동상도 세워져 있답니다. 유적지를 돌며 조선시대 활동한 의적들의 모습을 상상하여 보는 것도 참 재미있겠지요?
[1분 상식] 조선시대 신분, 어떻게 나뉘었나요?
조선시대의 신분은 크게 양인과 천민으로 나뉘었어요. 하지만 양인이 다시 양반·중인·상민으로 나뉘어, 실제로는 네 가지 신분이 있었지요. 양반은 과거에 응시하여 관리가 될 수 있는 지배계급이에요. 중인은 양반 아래 신분으로 관청에서 일하거나 통역(역관), 병을 고치는 일(의관) 등을 하던 계급입니다. 상민은 대부분이 농사짓는 농민이었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상민에 속했어요. 노비를 비롯하여 광대·무녀·악공·백정 등은 가장 하위 계급인 천민에 속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