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초상화가 나 대신 늙고 추해진다면…

입력 : 2015.01.07 03:05 | 수정 : 2015.01.07 09:12

[48]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영원한 젊음 원한 청년 '도리언'
자신 대신 악해지는 초상화 보며 끊임없이 죄짓다 영혼 병들어가죠

겉모습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 진정한 내면의 아름다움 찾아야

약 2000년 전, 광야 한가운데서 악마와 예수가 만났어요. 악마는 예수를 데리고 아주 높은 산에 올라가 세상 모든 나라와 화려한 영광을 보여주고는 "네가 나에게 절한다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말해요. 하지만 예수는 악마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악마의 제안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어요. '선(善)'의 세계를 '악(惡)'의 발아래 둔다는 목적이었지요. 이런 의도를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사탕발림 속에 교묘히 감춘 것이에요.

문학 작품에는 이러한 악마의 제안이 종종 등장합니다. 겉보기에 한없이 달콤한 악마의 제안에 응한 사람들은 결국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며 파멸하고 말아요. 오늘 함께 살펴볼 책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도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악마의 제안을 받은 것 같아요. 달콤한 유혹에 빠진 그는 앞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른 채 위태로운 삶을 살거든요.

[책으로 보는 세상] 초상화가 나 대신 늙고 추해진다면…
/그림=이병익
책의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는 무척 잘생기고 부유한 청년이에요. 그는 화가 바질 홀워드의 초상화 모델이 되어 주지요. 바질은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극대화하는 도리언을 경이롭게 생각하며 정성껏 그림을 그려요. 이때까지만 해도 순수함을 간직했던 도리언은 바질의 친구 헨리 워튼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갑니다. 헨리는 쾌락과 젊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자신의 영향으로 타락하는 도리언을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도리언의 삶과 가치관이 바뀌는 것을 보며 쾌감을 느끼지요. 젊음과 아름다움을 극찬하는 헨리의 말은 도리언의 마음에 악의 씨앗이 되어 뿌려집니다. 그래서 바질이 그려준 초상화를 받아든 순간, 도리언은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이렇게 중얼거려요.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점점 늙어가며 끔찍하고 흉측해지겠지. 하지만 이 그림은 항상 젊음을 간직할 거야. 정반대라면 좋으련만! 내가 항상 젊음을 간직하고, 이 그림이 나 대신 점점 늙어간다면 좋을 텐데! 그럴 수만 있다면 난 내 영혼이라도 바치겠어!"

어느 날, 자신과 결혼을 약속한 여배우 시빌 베인이 무대에서 연기를 망치자 크게 실망한 도리언은 그녀를 모욕하며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선언해요.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마주한 초상화에서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초상화에 그려진 자신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깃든 것이에요.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직후 충격적 소식이 전해집니다. 시빌 베인이 독극물을 마시고 자살하였다는 소식이었어요. 도리언은 자신의 잔인한 말과 행동이 불러올 참담한 결과를 이미 알았다는 듯 먼저 변해버린 초상화에 공포를 느낍니다. 하지만 이내 헨리의 위로에 빠져 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채 일상으로 돌아가요.

저자 '오스카 와일드'.
저자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은 아무도 초상화를 보지 못하게 안전한 장소로 옮기고 장막을 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늙음과 추함, 죄의 대가를 대신 가져가는 초상화를 보며 더욱 태연하게 죄를 지어요.

"캔버스 위에 채색한 이미지에 어떤 일이 생기든 무슨 상관인가? 그는 안전할 것이다. 바로 그 사실이 가장 중요한 점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원래대로 그림 앞에 장막을 쳤다. 그는 점차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고, 점점 자신의 영혼이 타락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도리언은 점점 심한 죄를 저지르고,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방탕하게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늘 매력적인 얼굴을 유지해요. '세월이 흐를수록 자기 인격이 얼굴에 드러난다'는 말은 도리언에게는 해당하지 않았어요. 그의 인격은 얼굴이 아닌 초상화에 새겨졌기 때문이에요.


#이야기

1996년, 정지선을 잘 지킨 운전자에게 냉장고를 선물하는 '양심 냉장고'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를 모았어요. 첫 촬영 날, 건물 옥상에 숨어서 촬영하던 제작진은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묵묵히 신호를 지키는 차 한 대를 발견했습니다. 기뻐하며 도로로 뛰어간 제작진은 깜짝 놀랐어요. 그 차의 운전자가 장애인이었기 때문이에요. 양심 냉장고를 받은 소감을 묻자, 그는 장애로 일그러진 얼굴 근육을 힘겹게 움직이며 이렇게 대답했어요. "전 늘 지켜요."

'양심(良心)'이란 자기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도덕적 책임을 생각하는 의식을 말해요. 양심 냉장고의 첫 주인은 자기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을 뿐인데, 이 행동이 당시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답니다. 겉모습에 관계없이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그의 행동이 참 아름다워 보였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아름다움의 기준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획일화된 외형적 미(美)와 젊음을 유지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두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지요.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우리 마음과 행동에서 우러나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거예요.


계속 죄를 지으며 살던 도리언은 어느 순간부터 초상화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집니다. 초상화를 누가 볼까 봐 전전긍긍하지요. 얼굴은 예전과 다름없이 아름답지만, 내면은 몹시 더럽고 추악해졌어요. 그가 죄를 지어 초상화 속 얼굴이 변할수록 그의 영혼도 차츰 병들었던 것이에요. 도리언은 모두가 숭배하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혐오하며, 과거를 모두 지우고 새 인생을 살고 싶어 해요. 결국 그는 초상화를 없애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자기 양심을 나타내는 초상화를 없애고자 칼을 든 도리언은 결국 자신에게 칼을 겨눈 셈이 되어 죽음을 맞고 말아요. 자신을 성찰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양심을 버린 대가는 너무도 컸습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은 잠깐의 편의를 위해 양심을 속인 적이 있나요? 반대로 어렵지만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에 대해서도 떠올려 보세요. 두 가지 경험을 통해 어떤 점을 깨달았는지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보세요.

박혜강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