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나라 위해 온 백성 일어선 120년 전 '을미년(乙未年)'

입력 : 2015.01.05 03:05 | 수정 : 2015.01.05 09:02

일본 세력이 커진 1895년 을미년… 명성황후 죽이고 폐위한 '을미사변', 단발령 등 실시한 '을미개혁' 벌어져
조선 백성, 친일 세력 몰아내기 위해 전국적으로 대규모 의병 일으켰어요

올해는 을미년(乙未年)이에요. 우리 조상은 예부터 하늘의 기운이나 운행 질서를 '천간(天干)'이라고 부르며,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 10가지로 나누었어요. 그리고 땅의 기운이나 운행 질서는 '지지(地支)'라고 부르며,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 12가지로 구분하였고요. 그리고 천간 10글자와 지지 12글자를 차례로 하나씩 짝지어 얻은 60개 낱말을 날(일·日), 달(월·月), 해(년·年)에 붙여 이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을미년'도 이렇게 붙여진 한 해의 이름이에요.

우리 역사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의 명칭도 그해에 붙은 이름과 사건의 성격을 합쳐 지은 경우가 많아요. 임진왜란(壬辰倭亂), 병자호란(丙子胡亂), 신해통공(辛亥通共), 신미양요(辛未洋擾), 갑오개혁(甲午改革), 갑신정변(甲申政變)처럼 말이에요. 120년 전인 1895년 을미년에도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많이 일어났지요. 당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함께 알아봐요.

◇일본인 손에 죽임을 당한 조선의 왕비

"조선에서 러시아 세력을 몰아내려면 민비(명성황후)를 없애야 한다. 민비를 없애는 일을 '여우사냥' 작전이라고 부르겠다."

[뉴스 속의 한국사] 나라 위해 온 백성 일어선 120년 전 '을미년'
/그림=이창우
명성황후가 러시아와 손잡고 조선 땅에서 일본을 몰아내려 하자, 일본은 자객과 군인을 동원해 경복궁에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무참히 시해하였어요. 이때가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이었지요. 이 사건을 '을미년에 갑자기 일어난 참변'이라 하여 '을미사변(乙未事變)' 또는 '을미참변(乙未慘變)'이라고 부릅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은 김홍집 내각에 있던 친러 세력을 몰아내고, 친일파 인사를 중심으로 다시 내각을 구성하였어요. 그리고 명성황후가 궁궐을 탈출한 것처럼 속여 말하며, 명성황후의 신분까지 평민으로 깎아내렸지요.

◇단발령 등 을미개혁에 반발한 조선 백성

"조선의 왕비가 끔찍하게 시해당한 것도 억울한데, 그 신분까지 깎아내리다니 참으로 분하도다!"

궁녀는 물론 당시 경복궁에 있던 미국인과 러시아인 등 시해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일본의 만행이 다른 나라 외교관들에게 알려졌어요. 조선 백성 사이에도 명성황후 시해와 폐위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 나갔지요. 이 소식을 들은 조선 유생들은 몹시 분노하였습니다. '유생(儒生)'이란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선비를 말해요.

"조선의 왕비를 시해한 역적을 처벌하고, 일본 세력을 이 땅에서 몰아냅시다!"

"일본에 위협받는 임금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킬 의병을 모읍시다!"

유생들은 역적을 처벌하자는 상소를 올리고, 백성에게 의병이 되어 싸울 것을 호소하며, 의병을 지도할 조직인 창의소를 만들기도 하였어요. 의병(義兵)이란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급할 때 백성 스스로 조직한 군대를 말하지요. 백성이 나라를 지키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정의롭게 전투에 나선 것이에요.

[뉴스 속의 한국사] 나라 위해 온 백성 일어선 120년 전 '을미년'
/그림=이창우
유생들이 일본 세력에 반대하며 의병을 일으키려 할 때, 친일 내각은 일본의 요구에 따라 1894년 갑오년부터 시행하던 개혁을 일본식으로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어요. 이때 이루어진 개혁을 '을미년에 일어난 개혁'이라고 하여 '을미개혁(乙未改革)'이라고 부릅니다. 을미개혁의 주요 내용은 태양력 실시, 종두법 시행, 소학교 설립, 우편 제도 실시, 단발령 실시 등이었어요. 단발령이란 남자들이 상투를 없애고 머리를 짧게 깎게 한 명령이에요.

"신체와 머리카락, 피부는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므로,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孝)의 시작이다."

"목이 잘릴지언정 결코 머리카락을 자를 수는 없다. 단발령을 실시하려는 일본을 몰아내자!"

일본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데 이어 친일 정부가 단발령까지 내리자 최익현, 유인석 등 유학자들이 나서서 외국 세력 개입을 반대하며, 조선의 유교 전통을 지킬 것을 강하게 주장했어요.

◇나라 위한 백성의 힘을 보여준 을미의병

"일본인과 친일 내각을 몰아냅시다!"

조선 백성도 일본과 친일 내각에 반대하며 의병이 되어 일본군과 조선 관군에 맞섰어요. 충청도 제천에서는 유인석, 강원도 춘천에서는 이소응, 강릉과 원주에서는 민용호, 경기도 이천과 여주에서는 김하락, 경상도에서는 곽종석, 허위 등이 의병을 이끌었습니다. 경상북도 영덕에서는 평민 신분으로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100여명의 의병을 이끌며 일본군을 혼내준 인물도 있었어요. 신돌석이란 인물이지요. 이렇게 을미년에 전국적으로 일어난 의병을 '을미의병(乙未義兵)'이라고 불러요.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규모 의병이 일어나자, 일본 세력과 친일 내각은 이를 막기 위해 지방에 군대를 보내야 했어요. 고종은 이때를 틈타 1896년 2월 11일에 궁궐에서 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했지요. 친일 내각이 물러나고, 고종이 의병들에게 "이만하면 우리의 의지를 널리 알렸으니 흩어져라"는 명령을 내리자 의병 활동이 점차 사그라졌지요. 을미의병은 나라를 위해 일어선 백성의 힘을 보여준 대단한 사건이었답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임진왜란, 병자호란, 신해통공, 신미양요, 갑오개혁, 갑신정변 등이 어떠한 사건이었는지 자세히 알아보고, 각 사건에 왜 이러한 이름을 붙였는지도 생각하여 보세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임학성 교수(인하대 한국학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