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사랑 담은 요리, 사람을 행복하게 한답니다

입력 : 2014.12.31 03:04 | 수정 : 2014.12.31 09:06

[47] 이사크 디네센 '바베트의 만찬'

청교도 마을서 검소하게 살던 자매… 프랑스 여인 바베트에게 살림 맡겨
마을에 갈등 생기자 만찬 연 바베트, 기적 같은 멋진 식사 만들어내… 사람들이 잊었던 사랑 일깨웠어요

최근 TV에는 먹는 방송, 이른바 '먹방'이 자주 나옵니다. 음식을 테마로 한 프로그램이 크게 늘었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음식 먹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해요. 인터넷 방송에는 '먹방' 관련 채널만 1만5000개가 넘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먹방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먹는 것도 아닌데, 왜 '먹방'에 열광할까요? 많은 사람이 그 이유로 '대리만족'을 꼽았다고 해요. 여러 가지 이유로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에요. 바쁜 생활 탓에 혼자서 밥을 대충 먹어야 하는 사람도 '먹방'을 즐겨 본다고 하고요. '식구(食口)'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족이 함께 밥 먹기도 어려운 요즘 세태가 참 안타깝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행복한 일도 흔치 않으니까요. 오늘 소개할 책 '바베트의 만찬'에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 마법 같은 요리가 등장합니다.

[책으로 보는 세상] 사랑 담은 요리, 사람을 행복하게 한답니다
/그림=이병익
'바베트의 만찬'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로 유명한 덴마크 작가 이사크 디네센의 작품이에요. 1800년대 중후반, 노르웨이의 베를레보그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지요. 마르티네와 필리파 자매는 목사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 대신 어려운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며 검소하게 살고 있었어요. 두 자매의 아름다움에 반해 사랑을 고백한 청년들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엄격한 가르침과 깊은 신앙심 때문에 자매는 세속의 사랑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871년 6월, 이들의 집에 프랑스 내란을 피해 도망친 한 여인이 찾아와요. 15년 전 필리파를 사랑했던 프랑스인 아실 파팽의 편지를 들고 말입니다. 그 여인이 바로 '바베트'이지요. 자매는 바베트가 가톨릭교도인 데다가 프랑스인이라는 점이 꺼림칙하였지만, 어려운 처지의 여인을 받아들이기로 해요. 베를레보그 마을 사람들도 자매와 같은 청교도로서 금욕적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이들은 사치를 죄악으로 여기며 간소하고 조용한 삶을 살았지요. 바베트는 그 속에서 훌륭하게 살림을 돌보며 자매가 이웃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돕습니다.

"바베트가 집안일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매는 살림에 드는 비용이 놀랍게 줄고, 이웃을 위해 준비한 수프와 빵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살찌우는 신비로운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느덧 12년이 흘렀어요. 자매와 바베트가 헌신적으로 노력했음에도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불화와 갈등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자매는 마을 사람들을 잘 돌보려고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바베트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프랑스에서 사 두었던 복권이 1만프랑에 당첨된 것이지요. 바베트는 그 돈으로 죽은 목사의 100번째 생일 만찬을 차릴 수 있게 해달라고 자매에게 부탁해요. 검소한 삶을 살아온 자매는 그것을 사치로 여기며 반대하지만, 바베트의 계속된 간청에 결국 승낙해요. 그리고 만찬에 초대된 손님들은 평생 잊지 못할 멋진 식사를 대접받습니다.

#이야기

지난 2011년 한식당 최초로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받은 미국 뉴욕의‘단지’모습이에요.
지난 2011년 한식당 최초로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받은 미국 뉴욕의‘단지’모습이에요. 미슐랭 가이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레스토랑 평가서이지요. /블룸버그
여러분은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미슐랭 가이드는 프랑스의 한 타이어 회사가 매년 발간하는 전 세계 레스토랑 평가서입니다. 맛과 가격, 서비스, 분위기, 위생 상태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여 별점을 매기지요. 미슐랭 가이드는 각 식당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으며, 최고의 여행 안내서로도 꼽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좋은 평가를 받은 식당 주인은 부와 명성을 누린다고 하니,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식당 평가서가 이처럼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이유는 사람들이 '먹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음식을 하나의 예술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슐랭 가이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바베트의 만찬에 초대되었다면, 과연 어떤 보고서를 작성하였을까요?

바베트가 차린 음식을 먹을수록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사랑과 온기가 퍼져 나갑니다. 자매와 마을 사람들은 이 만찬을 통해 잊고 있던 신의 은총과 사랑을 느끼며 서로를 축복하지요.

"그 후에 일어난 일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손님들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마치 수많은 작은 후광이 하나로 합쳐져 거룩한 광채를 내기라도 한 듯 천상의 빛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는 것 외에는…. 말수가 적은 노인들은 말문이 트였고, 수년간 거의 듣지 못했던 귀가 열렸다. 시간은 영원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만찬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기쁨 중 하나예요. 그리고 책을 읽은 다음에는 덴마크 감독 가브리엘 엑셀이 만든 영화 '바베트의 만찬'을 보며, 여러분이 상상한 모습과 비교해 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을 거예요. 연말연시를 맞아 여러분도 한 번쯤 가족이나 친구, 이웃을 위해 정성껏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보면 어떨까요? 혼자서 하기 어렵다면, 부모님과 함께 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바베트가 차린 화려한 만찬이 아니더라도,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을 거예요.


[함께 생각해봐요]

베를레보그 마을 사람들은 사치스러운 음식을 먹는 것은 죄스러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달리 바베트는 요리를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누구의 생각에 동의하나요?

최혜정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수석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