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죽은 아버지를 왕으로 기리며 만든 '덕종어보'

입력 : 2014.12.29 03:05 | 수정 : 2014.12.29 06:33

조카 단종 쫓아내고 왕이 된 세조… 맏아들 의경세자가 스무 살에 죽자 단종 어머니의 저주라는 소문 퍼져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9대 왕 성종… 아버지를 '덕종'으로 높여 모셨어요

미국 시애틀미술관이 소장하던 조선 '덕종어보'가 내년 3월 우리나라에 온다고 해요. 문화재청이 시애틀미술관과 합의하여 돌려받게 되었지요. 덕종어보는 조선 제9대 왕 성종이 아버지인 덕종을 위해 제작한 것이에요. '어보(御寶)'란 왕실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을 말하고요. 국왕의 즉위나 왕실 혼례, 왕비·세자·세자빈 책봉 등 궁중 의식을 치를 때 사용하였는데, 손잡이 부분을 거북이나 용 모양으로 장식하였어요.

성종의 아버지인 덕종은 조선 제7대 왕인 세조의 맏아들이에요. 그렇다면 덕종이 조선 제8대 왕일까요? 아니에요. 조선 제8대 왕은 예종이거든요. 덕종은 사실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였답니다. 덕종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왕위에 오르지 못했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조선시대로 떠나볼까요?

◇세조의 맏아들, 세자가 되다

1453년,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등 조정 대신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어요. 그리고 1455년에 조카인 단종을 협박하여 물러나게 하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지요. 그가 바로 조선 제7대 왕 세조예요.

[뉴스 속의 한국사] 죽은 아버지를 왕으로 기리며 만든 '덕종어보'
/그림=이창우
세조가 왕이 되면서 그의 맏아들 장(暲)이 세자로 책봉되어 의경세자가 되었어요. 의경세자는 어려서부터 예절이 바르고 글 읽기를 즐겼으며 서예에도 뛰어났어요. 세자가 되기 전에 명나라 황실의 신임을 받던 문신 한확의 딸과 혼인하였고요. 그가 세자가 되자 부인 한씨는 세자빈이 되어 수빈에 책봉되었고, 그가 낳은 아들은 월산군, 딸은 명숙군주가 되었습니다.

1457년 의경세자는 수빈 한씨와의 사이에서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을 얻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을산군이 태어난 지 두 달도 못 되어 의경세자가 숨을 거두고 말지요. 이때 그의 나이 스무 살이었어요. 의경세자가 요절하자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세상에 좋지 않은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의경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소문

"자네 그 이야기 들었나? 세자가 죽었대."

"들었지. 정말로 현덕왕후의 저주를 받은 게 아닐까?"

"저주라니?"

"임금께서 한 달 전쯤 꿈을 꾸었는데, 현덕왕후께서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대. '네가 죄 없는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고 말이야."

세조의 꿈에 나타나 저주하였다는 현덕왕후는 조선 제5대 왕인 문종의 왕비이자 세조에게 쫓겨나 죽임을 당한 단종의 어머니예요. 세조에게는 형의 아내, 즉 형수가 되는 셈이지요. 현덕왕후는 1441년 단종을 낳은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민간에서는 현덕왕후의 저주로 의경세자가 죽었다고 생각한 세조가 현덕왕후의 능을 파헤치고 관을 꺼내어 바다에 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하지요.

그렇다면 이 소문은 사실일까요? 세조에게 선위(禪位·왕이 살아서 다른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줌)하고, 상왕(上王)으로 물러났던 단종은 사육신이 중심이 된 단종 복위 운동 때 반역을 부추겼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났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죽임을 당했지요.

[뉴스 속의 한국사] 죽은 아버지를 왕으로 기리며 만든 '덕종어보'
/그림=이창우
그런데 단종이 죽은 때는 1457년 음력 10월 21일이고, 의경세자가 죽은 때는 1457년 음력 9월 2일이에요. 의경세자가 단종보다 한 달 정도 먼저 세상을 떠났지요. 그러니까 현덕왕후의 저주로 의경세자가 죽었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헛소문이었어요. 당시 이런 소문이 퍼진 이유는 백성이 마음속으로 단종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었겠지요. 반면 세조는 어린 조카에게서 왕위를 빼앗고, 동생인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사육신 등의 신하들을 죽인 폭군으로 생각하였을 테고요.

◇임금으로 높여진 의경세자

의경세자가 죽고 나서 세조는 여덟 살이던 둘째 아들 해양대군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그리고 1468년 세조가 죽자 해양대군이 열아홉 살 나이로 왕위에 올라 조선 제8대 왕 예종이 되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종 역시 형인 의경세자처럼 병을 얻어 왕위에 오른 지 일 년여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아요. 공교롭게도 의경세자와 같은 스무 살 때였지요.

예종이 죽자 세조의 왕비였던 정희왕후 윤씨와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한명회가 중심이 되어 새 왕을 정합니다. 그들이 왕으로 정한 인물은 누구였을까요?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 의경세자의 맏아들인 월산군이 아니라,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이었어요. 자을산군은 한명회의 사위이기도 하였지요. 이때 왕위에 오른 자을산군이 바로 조선 제9대 왕 성종입니다.

성종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아버지 의경세자에게 왕의 칭호를 붙이고, '덕종'이라는 묘호를 올렸어요. '묘호(廟號)'란 왕이 세상을 떠난 뒤에 그 공덕을 기려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올리는 이름이지요. 의경세자의 부인이자 성종의 어머니인 수빈 한씨도 소혜왕후로 책봉되고, 이어서 인수대비가 되었답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주는 것을 '추존(追尊)' 혹은 '추숭(追崇)'이라고 해요. 조선시대에는 덕종 말고도 원종, 진종, 장조, 익종 등 여러 왕이 추존되었지요. 이들이 어떤 이유로 추존되었는지 자세히 알아보세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임학성 교수(인하대 한국학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