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컴퓨터, 암호 해독기에서 시작되었답니다
[암호와 컴퓨터]
세계대전 때 독일 암호기 '에니그마', 2200만개 배열을 매일 바꾸었어요
튜링, 계산 기계로 복잡한 암호 해독
기계 속 테이프는 컴퓨터 메모리로, 작동규칙표는 CPU로 발전했답니다
- ▲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은 치밀한 연산이 가능한 기계를 만들어 독일군 암호기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데 성공하였어요. 그 덕분에 영국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요. /블룸버그
"열려라, 참깨!"
이 말을 모르는 어린이는 없을 거예요. 알리바바가 동굴을 가로막은 커다란 바위를 향해 크게 외치자 바위 문이 열립니다. 알리바바는 동굴에 들어가 도둑들이 숨겨 놓은 보물을 몽땅 가져가 버리지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40인의 도둑은 몹시 당황합니다. 허술한 암호 관리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니까요.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암호 관리의 중요성'이라는 새로운 교훈을 줍니다.
최근엔 소니픽처스가 만든 코미디 영화 '인터뷰(The Interview)'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어요. 북한 김정은을 암살하는 내용을 다루었기 때문이에요. 예고편 영상을 공개하고 나서는 알 수 없는 단체에 의해서 영화사가 해킹을 당하였지요. 해킹 단체로부터 테러 위협까지 받은 소니픽처스는 영화 상영을 포기하였다가 다시 상영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어요. '해킹(hacking)'이란 다른 사람의 컴퓨터 시스템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없애거나 망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몇 년 새 해킹으로 큰 피해가 발생하면서 정보 보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요.
그런데 암호를 만들어 보안을 강화하는 사람과 암호를 풀어내는 사람 사이의 싸움은 오늘날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이 싸움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계속됐답니다. 가장 어려운 암호를 만들고, 그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가 바로 오늘날의 컴퓨터로 발전하였지요.
고대 로마의 학자였던 플루타르크가 쓴 역사책에 따르면, 최초의 암호는 기원전 400년경 그리스의 스파르타 군대에서 사용되었어요. 전쟁 중 비밀리에 편지를 주고받기 위해 암호를 썼다고 해요. '스키테일(Scytale)'이라는 나무봉을 사용한 암호였지요. 기다란 양피지에 쓴 편지를 봉에 돌돌 말아야 정확한 내용이 보이는 방법이었어요. 반드시 굵기가 같은 스키테일을 사용해야만 암호를 해독할 수 있었습니다.
- ▲ 오늘날 기상 예측, 우주탐사 등에 사용되는 수퍼컴퓨터예요. 인류 생활을 혁신적으로 바꾼 컴퓨터는 사실 세계대전 중 만들어진 암호 해독기에서 시작되었대요. /Corbis/토픽이미지
로마의 카이사르도 암호로 된 편지를 즐겨 사용하였어요. 카이사르 암호는 우리도 간단히 만들 수 있답니다. 암호로 만들고자 하는 내용을 알파벳으로 적은 다음, 그 글자보다 몇 번째 뒤나 앞의 글자로 바꾸는 방식이거든요. 예를 들어 'I LOVE YOU'를 쓰고 싶을 때는 각 알파벳보다 세 자리 뒤의 것으로 바꿔서 'L ORYH BRX'라고 쓰는 거예요. 어때요? 원리를 알고 나니 암호 만들기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지요?
암호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세계대전 중 독일이 만든 에니그마(Enigma·그리스어로 '수수께끼'라는 뜻)예요. 타자기 모양으로 생긴 이 기계에 문서를 입력하면 내부에 있는 회전체가 돌면서 구멍을 뚫어 이해할 수 없는 2200만개의 배열로 바뀌었어요. 입력한 글자가 다른 글자로 바뀌어서 나오는 신기한 기계였지요. 에니그마로 작성한 문서는 에니그마 없이는 해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독일은 암호 조합 방식도 매일 새롭게 바꾸었고요. 24시간 안에 암호를 해독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으니, 에니그마는 한마디로 난공불락의 암호 생성기 겸 해독기였답니다. 독일군은 U보트라는 잠수함 무리를 이끌고 연합군이 지나는 바다 밑을 지키다가 일시에 공격하는 방법을 사용했어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격한다는 내용은 모두 에니그마로 작성되었고요. 바다 밑으로 다니는 잠수함이 어떻게 공격해 올지 모르는 영국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답답하였을 거예요.
- ▲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 군대가 사용한 스키테일 암호(사진 위).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사용한 암호기 ‘에니그마’. /위키피디아
결국 영국은 유능한 과학자들을 블레츨리 파크라는 연구소에 모아 에니그마 해독 작업에 착수했어요.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1912~1954)이 중심이 된 이 연구소에서는 치밀한 수학 계산이 가능한 봄베·콜로서스 등의 기계를 만들었지요. 그러고 나서 이 기계와 침몰한 독일 잠수함에서 찾아낸 암호 책을 가지고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시작했어요. 전날 해독된 암호들은 과감히 지우고, 자주 사용되는 단어에 주의를 기울이며 군대 용어와의 연관성을 찾아나갔지요. 이런 작업을 반복하여 경우의 수를 점차 줄여나가면서 영국 과학자들은 드디어 암호 해독에 성공하였습니다. 독일군의 작전을 알게 된 영국군은 이제 적의 공격에 미리 대비하며 역공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로 인해 전세가 뒤바뀌었고, 결국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는 대서양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어요.
튜링이 만든 기계에 내장된 테이프는 지금의 컴퓨터 메모리로 발전하였어요. 테이프를 읽고 쓰기 위한 장치는 컴퓨터의 메모리칩과 입출력 장치가 되었으며, 작동규칙표는 중앙처리장치(CPU)가 되었습니다. 천재 수학자였던 튜링의 암호 해독 노력에서 오늘날의 컴퓨터공학이 시작되었지요. 그러니 컴퓨터 사용에서 암호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예요. 매년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튜링상'은 노벨상 못지않은 명성을 얻고 있어요.
정보의 중요성은 과거에는 주로 전쟁에서 나타났지만, '손안의 컴퓨터'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정보 보호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가 되었어요. 은행 거래를 할 때도, 인터넷 학습 사이트를 이용해 공부할 때도, 아파트 현관문을 열 때도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잖아요. 지금은 주로 알파벳이나 숫자, 특수문자를 조합한 비밀번호를 쓰고, 그리는 패턴을 사용하거나 지문 인식 방식을 쓰기도 해요. 첩보 영화에서는 홍채를 인식하는 장면도 자주 등장하고요.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정보사회에는 정보가 곧 힘이 돼요. 여러분도 소중한 개인 정보를 잘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