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삶, 구름처럼 덧없이 흐르는 것

입력 : 2014.12.17 05:36 | 수정 : 2014.12.17 09:14

[45] 김만중 '구운몽'

승려 성진, 꿈에서 부귀영화 누리다 인생의 덧없음 깨달은 순간 잠 깨어
김만중이 유배 중에 쓴 '구운몽'… 삶에 지친 이에게 위로 되었답니다
영조 임금도 힘들 때 즐겨 읽었대요

12월이 되면 TV 등 여러 대중매체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어요. 바로 지독한 구두쇠 '스크루지'예요.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는 추운 겨울에 누가 얼어 죽든 굶어 죽든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로지 돈과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에 악몽을 꾸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꿈에서 과거, 현재, 미래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본인의 악하고 추한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잘못을 깊이 뉘우쳤거든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에 등장하는 '꿈'은 현실에서는 겪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환상의 공간이자, 사람의 삶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로 활용되었어요. 조선시대 김만중이 쓴 '구운몽(九雲夢)'도 마찬가지예요.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과 다른 점은 주인공이 악몽이 아니라 좋은 꿈을 꾼다는 점이지요.

'구운몽'은 등장인물 아홉 명이 꿈속에서 펼치는 삶을 담은 우리나라 고전소설입니다. 작가의 경험과 불교·도교 사상이 잘 어우러졌지요. 소설의 주제와는 별개로 내용 자체는 판타지 드라마 느낌을 자아냅니다.

구운몽 일러스트
그림=이병익

구운몽의 주인공은 수행 중이던 승려 '성진'이에요. 성진은 어느 날 한 편의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양처사의 아들 양소유로 태어난 그는 팔선녀가 환생한 여덟 여인을 차례로 만나 부인으로 맞이하고, 나라를 위해 일하며 입신양명하여 황제와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요. 인간이 이승에서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모두 누리지요. 그러다 나이가 들어 정계에서 물러난 양소유는 어느 날 문득 인간의 부귀영화가 모두 덧없음을 깨닫습니다. 여덟 부인을 불러놓고, 자신은 깨달음을 얻어 인간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떠나겠다고 말하며 작별을 고하지요. 그런데 양소유가 그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모든 것이 사라지면서 본래 성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작은 암자에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성진은 이 내용을 스승인 육관대사에게 전해요. 그러자 육관대사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예를 들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수행을 게을리 한 성진을 꾸짖어요.

"너는 아직도 꿈을 깨닫지 못하였도다.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 나비가 또 변하여 장자가 되자, 어느 것이 거짓이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 분별하지 못하였나니, 어제의 성진과 소유는 어느 것이 정말 꿈이고, 어느 것이 꿈이 아니뇨?"

이 소설은 '현실-꿈-현실'의 구조 속에서 삶의 덧없음을 깨닫는 과정을 잘 보여줘요. 제목의 '구(九)'는 아홉 명의 사람을, '운(雲)'은 구름을, '몽(夢)'은 꿈을 뜻합니다. 하늘에 뜬 구름은 형체는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수증기가 뭉친 덩어리에 불과해요. 쉽게 모였다가 쉽게 흩어지지요. 무언가 있는 듯 없는 듯하고,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아요. 그래서 예부터 인생의 덧없음을 구름에 자주 비유하였지요.

'인생의 덧없음'이라니, 어려운 말이지요? 인생을 살다 보면 항상 원하는 대로만 할 수 없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이루기 어려운 일도 있어요.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험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몇 년간 저축하여 모은 돈을 잘못된 투자로 하루아침에 잃기도 해요. 평소에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던 사람이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요. 삶이란 우리의 예상이나 소망과는 전혀 관계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곤 하지요. 이처럼 개인의 의지나 욕망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과 인생의 면면을 가리켜 '덧없다'고 이야기해요.

'구운몽'을 쓴 서포 김만중은 1637년에 태어나 조선시대 붕당정치가 한창이던 시기에 활동했어요. 숙종 때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을 역임하였지만, 권력 다툼에 휘말려 유배되었고 1692년 숨을 거두었어요. 권력을 탐하고 반대 세력을 가차없이 죽여 버리는 정치판을 보며 김만중은 여러 생각을 했을 거예요. 인생이 덧없다고도 느꼈을 테고, 반대로 그저 인생을 행복하고 재미있게 보낼 수 없을까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특히 '구운몽'은 파직과 복직을 번갈아 하던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썼다고 하니, 잠시 시름을 내려놓으라는 뜻을 담은 책이기도 합니다. 훗날 영조 임금은 정치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마다 이 책을 즐겨 읽었다고 해요.

록펠러 사진
Corbis/토픽이미지

#이야기

20세기 초 '미국의 석유왕'이라 불리며 미국 최대 부호 중 하나가 된 록펠러〈사진〉는 55세 때 암에 걸려 일 년도 채 못 산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어요. 그는 이를 계기로 평생을 바쳐 이룩한 부와 명예가 삶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록펠러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곳곳에 재산을 기부하며 소외된 사람들과 미국 사회를 위해 선행을 펼쳤어요. 이후 건강을 회복한 그는 98세까지 장수하였는데 자서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해요.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고,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데 부와 명예는 매우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복의 수단이 되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운몽'은 성진의 꿈을 통해 부귀영화의 덧없음과 더불어 지나친 욕망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주지요.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세상이 이상적인지, 우리가 삶에서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도 되새겨야 하지요. 2014년의 마지막 달, 여러분은 올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돌이켜보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여러분이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계획을 세워 보세요.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은 어떤 일을 잘하려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오히려 실패해 본 적이 있나요?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성과를 얻은 경험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두 가지 경험을 떠올리며 비교해 보세요.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것’과 ‘최선을 다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김대근·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