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창문 막힌 영국식 건물, 세금 때문이래요

입력 : 2014.12.12 05:37 | 수정 : 2014.12.12 08:59

[창문세]

군자금 필요했던 영국 윌리엄 3세, 창문 개수 세어 세금 매겼답니다
국민, 갑갑한 집에 살며 건강 악화…
창 폭에 따라 세금 거둔 프랑스에선 길고 좁은 창문이 유행했어요

'세상 사람 누구도 절대 피해갈 수 없는 두 가지는 죽음과 이것이다.'(서양 속담)

'가혹한 이것은 호랑이보다도 무섭다.'(중국 공자)

위의 문장에 공통으로 들어갈 '이것'은 과연 뭘까요? 다들 곰곰이 생각해 봤나요? 정답은 바로 '세금'이에요. 세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거둬들이는 수입을 말해요. 모든 국민에겐 '납세의 의무', 즉 세금을 내야 할 의무가 있지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거둬들인 세금으로 공무원의 월급을 주고, 도로·상하수도 시설 등을 개선하며, 각종 복지사업을 벌입니다. 수입이 많은 사람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해 빈부 격차를 줄이는 역할도 하고요. 듣고 보니 세금은 꼭 내야 하는 것 같지요? 그런데 왜 공자는 세금이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한 것일까요? 세금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역사적으로 공정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무거운 세금이 부과된 사례도 적지 않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에 저항하기도 하였어요.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민심을 얻고자 세금을 줄이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인도에서는 이슬람교로 개종하면 인두세(人頭稅·성별이나 신분, 소득 등에 관계없이 성인이 된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세금)를 면제해 주는 정책을 써서 이슬람 세력이 확대되기도 하였고요. 중국 청나라는 인두세를 받지 않고 토지세만 받는 지정은제를 시행하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지요. 그만큼 백성이 세금 부담을 크게 느꼈다는 뜻이에요. 신라 말 진성여왕 때나 고려의 무신집권기, 19세기 조선의 세도정치기에 농민 반란이 끊이지 않은 것도 모두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거두었기 때문이랍니다.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배경도 결국 공평하지 않은 세금 때문이었고요. 미국 독립전쟁 역시 영국이 차(茶)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자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이 이에 반발하면서 일어났어요.

영국의 어느 건물 모습이에요. 군데군데 창문이 막힌 모습이 이채롭지요? 1696년 창문 개수에 따라 세금을 내는 ‘창문세’가 생기자, 영국 사람들은 세금을 피하고자 아예 창문을 막아버렸다고 해요
영국의 어느 건물 모습이에요. 군데군데 창문이 막힌 모습이 이채롭지요? 1696년 창문 개수에 따라 세금을 내는 ‘창문세’가 생기자, 영국 사람들은 세금을 피하고자 아예 창문을 막아버렸다고 해요. /Whilesteps/위키피디아

역사를 살펴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세금을 조금이라도 더 거두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했습니다. 그중 가장 어이없는 세금으로 '창문세'가 있어요. 명예혁명(1688년)으로 영국의 왕이 된 윌리엄 3세는 잦은 전쟁으로 많은 돈이 필요했어요. 그는 어떻게 하면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둘까 고민하였지요. 당시에는 정확한 소득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유한 사람의 기준을 무엇으로 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어요. 게다가 그때 이미 영국에는 벽난로가 있는 가정에 세금을 부과하는 '난로세'도 있었거든요. 호화로운 주택에서 벽난로를 사용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집집마다 들어가서 난로가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매우 번거로웠어요.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와 난로를 확인하면 자유를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난로세를 내지 않으려고 난로를 없애버리는 사람도 많았고요.

'창문세'를 만든 영국의 윌리엄 3세 초상화
'창문세'를 만든 영국의 윌리엄 3세 초상. /위키피디아

윌리엄 3세는 민심을 얻고자 난로세를 폐지하고, 1696년 '창문세'를 신설하였어요. 부유한 가정일수록 집이 크고, 집이 크면 창문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창문의 수가 6개 이하이면 세금 면제, 7~9개는 2실링, 10~19개는 4실링, 20개 이상은 8실링의 세금을 내게 하였지요. 집 안을 살펴봐야 확인할 수 있는 난로와 달리 창문은 집 밖에서도 쉽게 개수를 셀 수 있어서 세금을 걷기에도 편리하다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어요. 그들은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암흑 속에 갇히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유리창을 나무판자로 막아버리거나 아예 벽돌을 쌓아 없애 버린 거예요. 창문을 세는 관리가 찾아오는 날에만 잠시 창문을 없앴다가 나중에 다시 사용하기도 하였어요. 두 개의 창문을 마치 한 개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도 사용하였고요. 그래서 덩치는 커다랗지만, 창문은 몇 개 되지 않는 이상한 건물들이 생겨났답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정원에 나와 햇볕을 쬐고 신선한 공기를 마셨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난로도 창문도 없는 집에서 음산하게 지내야만 했어요. 그러자 국민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습니다. 창문세는 150여년간 지속하다가, 1851년 주택세가 생기면서 폐지되었어요.

프랑스에는 창 너비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창문세가 있었대요.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집에 폭이 좁고 긴 창문을 냈답니다.
프랑스에는 창 너비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창문세가 있었대요.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집에 폭이 좁고 긴 창문을 냈답니다. / Corbis/토픽이미지
그런가 하면 프랑스는 영국보다 먼저 창문세를 거둔 적이 있답니다. 필립 4세 때인 14세기와 백년전쟁(1337~1453년) 중에 창문세를 부과하였는데, 1789년 프랑스혁명 후 귀족들에게 세금을 거두기 위해 다시 만들었어요. 영국처럼 창문 개수를 세는 것이 아니라 창문 폭에 따라 세금을 내게 하였지요. 부유한 사람일수록 창을 크고 넓게 낸다는 것에 기준을 두었답니다. 그러자 프랑스 사람들은 세금을 덜 내기 위해 폭이 좁고, 세로로 긴 창문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아름답다고 평가하는 낭만적인 프랑스식 창문은 이런 이유로 생겨났답니다. 창문 없는 영국식 건물과 길고 좁은 창문을 가진 프랑스식 건물에는 부적절한 근거로 세금을 걷는 정부를 비난한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공미라·세계사 저술가 |